고대사

인더스 문명 강배에는 몇 개의 돛이 있었을까? 고고학적 증거가 말해주는 것

인더스 문명(하라파 문명)은 기원전 2600년경부터 1900년경까지 인더스강 유역에서 번성했던 고대 문명으로, 메소포타미아와의 해상 무역까지 이루어진 광범위한 상업 네트워크를 운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명의 강배(강에서 운항하던 배)에는 과연 몇 개의 돛이 달려 있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로서는 정확한 돛의 개수를 알 수 없습니다. 그 이유와 함께 지금까지 밝혀진 단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왜 돛의 개수를 알 수 없는가?

가장 큰 원인은 남아 있는 기록과 고고학적 증거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입니다.

1. 미해독 문자

인더스 문명은 자체 문자 체계를 사용했지만,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이 배의 구조나 항해 방식에 대해 남긴 직접적인 기록을 읽을 방법이 없습니다.

2. 배 유물의 부재

당시 배 선체 자체가 발굴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목선은 오랜 세월 동안 썩어 사라지기 때문에, 이집트처럼 건조한 환경이 아니면 실물이 남기 어렵습니다. 인더스 지역의 습윤한 토양 조건 역시 배 유물 보존에 불리했습니다.

유물 속에서 엿보는 인더스의 배

그럼에도 몇 가지 간접적인 단서는 존재합니다.

  • 모헨조다로의 석판·인장: 선실이 딸린 배가 새겨져 있으며, 돛대로 보이는 구조물의 존재 여부를 두고 학자들 의견이 갈립니다.
  • 테라코타(점토) 배 모형: 소형 배 모형들이 출토되었으나, 돛의 유무를 단정하기에는 형태가 불분명합니다.
  • 로탈(Lothal) 항구 유적: 세계 최초급의 조선소·선석 시설로 추정되는 유적으로, 인더스 문명이 수운을 적극 활용했음을 보여줍니다.

일부 연구자는 인장에 묘사된 구조물을 근거로 돛 사용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반면 다른 학자들은 인더스강의 얕은 수심과 물살, 계절풍의 특성을 고려할 때, 노나 장대로 배를 젓거나 강변에서 끌어 올리는 방식이 더 실용적이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결론

인더스 문명 강배의 돛 개수는 생존한 기록과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하여 확인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다만 인장과 유물 속 배 묘사, 로탈 항구 유적 등은 이 문명이 뛰어난 수상 교통 능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앞으로 인더스 문자 해독이 진전되거나 새로운 유물이 발견된다면, 당시 항해 기술에 대한 더 구체적인 답이 밝혀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