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M3 그랜트·리 전차: 북아프리카에서 소련, 태평양까지 달린 제2차 세계대전의 미국 중형전차

M3 그랜트·리 전차: 북아프리카에서 소련, 태평양까지 달린 제2차 세계대전의 미국 중형전차

M3 전차는 미국 남북전쟁의 유명한 장군 두 사람의 이름을 따 '그랜트(Grant)'와 '리(Lee)'로 불렸으며, 미군 최초의 실전 배치가 가능한 중형전차였다. 그러나 이 전차가 처음으로 전장에 투입된 곳은 뜨거운 사막이 펼쳐진 북아프리카였고, 영국군의 깃발 아래에서였다.

미국 최초의 실전 중형전차

M3는 프랑스의 샤르 B1 비스(Char B1 bis)를 모델로 삼은 미국제 전차였다. 차체 우측면에 75mm M2/M3 주포를 장착했고, 포탑에는 37mm 포를 얹었으며, 여기에 0.30인치(7.62mm) 기관총 2~4정을 추가로 갖췄다. 무게는 27톤, 최대 장갑 두께는 51mm에 달했고, 승무원은 영국형(그랜트) 6명, 미국형(리) 7명이었다.

도로상 최고 속도는 시속 약 42km, 항속 거리는 약 190km였다. 가장 큰 단점은 3.12m에 이르는 거대한 차체 높이였다. 덕분에 적에게 쉽게 드러나는 표적이 되었고, 차체에 주포를 장착한 탓에 지형을 활용해 차체 하단만 노출시키는 '헐 다운' 기동도 불가능했다. 이 형식의 전차는 총 6,258대가 생산되었다.

북아프리카의 성공

M3 전차가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된 것은 1942년 5월 27일 가잘라 전투에서 영국 제8군 예하 기갑여단 소속이었다. 당시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은 2파운더 경포 정도로 무장한 영국 전차와만 맞서 왔기 때문에, M3의 등장은 그들에게 매우 불쾌한 충격이었다.

독일군은 M3가 75mm 주포를 이용해 50mm 포를 장착한 3호 전차(Pz III)는 물론, 같은 구경의 독일 대전차포마저 상대가 응사할 수 없는 거리에서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탈리아 전차들에게는 더욱 희망이 없었다. 훗날 원수가 되는 롬멜은 이렇게 기록했다. "1942년 5월까지 우리 전차는 대응하는 영국 전차보다 대체로 우수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적어도 같은 수준으로는 말이다." 다만 M3의 진정한 천적은 무시무시한 독일 88mm 포였다.

미군이 M3를 처음으로 전투에 사용한 것은 횃불 작전(Operation Torch), 즉 비시 정부가 통치하던 프랑스령 북아프리카 상륙 작전 때였다. 북아프리카에서 M3는 준수한 성과를 냈지만, 곧바로 M4 셔먼으로 교체되었고 유럽 전역에서는 전차로서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소련에 인도된 물량만이 예외였다.

얼어붙은 대초원 위에서

소련에는 이 형식의 전차 약 1,400대가 공여되었으나,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약 980대였다. 나머지는 운반선과 함께 바다에 침몰했다. 소련에 보내진 M3는 미국식 포탑을 단 '리' 형식이었지만, 소련군은 영국식 포탑을 가진 이름인 '그랜트'로 불렀다. 소련군은 휘발유 엔진 때문에 이 전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1943년부터는 후방 및 보조 임무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동부 전선 북부에서 독일군과 핀란드군과 싸웠으며, 유명한 쿠르스크 전투에서도 사용되었다.

태평양 전선에서

태평양 전역에서 기갑장비의 활용은 제한적이었고, 일본군 역시 특별히 눈여겨볼 만한 전차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곳에서 M3는 일본 전차를 쉽게 압도할 수 있었고, 보병 지원이라는 새로운 주력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M3는 미군보다는 영국군과 호주군과 함께 작전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미군은 1943년 마셜 제도와 길버트 제도 전투, 그리고 같은 해 마킨 섬 전투에서 제27보병사단을 지원하는 데 M3를 사용했다. 반면 영국군은 버마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M3를 광범위하게 운용했으며, 윌리엄 슬림 장군의 유명한 제14군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임팔 전투에서는 영국군 M3들이 일본 제14전차연대와 맞서 승리를 거두며 일본군의 공세를 격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M3 그랜트·리 전차: 북아프리카에서 소련, 태평양까지 달린 제2차 세계대전의 미국 중형전차

M3 그랜트(왼쪽)와 M3 리(오른쪽). 서로 다른 포탑 형상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