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 공개된 돌격대원의 진술서
독일 언론에 따르면, 나치 돌격대(SA) 출신 한 남성이 남긴 진술서가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이 1933년 독일 국회의사당(라이히스타크) 방화 사건의 배후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그룹 RND가 공개한 이 문서는 1955년 작성된 것으로, 하노버 행정법원 기록 보관소에서 발견되었으며 법원은 그 진본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이 증언은 방화 용의자로 지목되어 1934년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된 네덜란드 출신 공산주의 노동조합원 마리누스 판 데르 루베(Marinus van der Lubbe)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내용입니다. 당시 돌격대 소속이었던 증인은, 정신이 혼란스러워 보이던 젊은 판 데르 루베를 돌격대 의무실에서 국회의사당까지 차로 태워다 주었다고 회고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조직의 다른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타는 냄새”와 “방 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목격했다고 전합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불이 붙어 있었다”
이 진술서 사본을 입수한 독일 통신사에 따르면, 증인 한스 마르틴 레닝스(Hans Martin Lennings, 1904~1962)는 동료 돌격대원들과 함께 네덜란드인의 체포에 항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우리가 판 데르 루베를 국회의사당에 데려다줬을 때 이미 건물에서 불이 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방화범일 리 없다고 확신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러한 항의 때문에 레닝스와 동료들은 모두 예방구금에 처해졌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취지의 문서에 서명하도록” 강요당했다고 합니다. 이 증언은 1955년 판 데르 루베 사건의 사후 재조사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단독 범행설 vs 나치 음모설
당시 젊은 네덜란드 청년은 건물에 불을 질렀으며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히틀러는 공산주의 세력의 음모를 규탄하며 이 방화 사건을 독재 체제 확립의 구실로 삼았습니다. 전후에는 나치가 실제 배후였는지에 대해 수많은 의문과 상반된 견해가 제기되었습니다.
1950년대 후반, 작가이자 전직 공무원인 프리츠 토비아스(Fritz Tobias)는 네덜란드 노동조합원의 단독 범행 시나리오를 강화하는 연구를 발표했고, 권위 있는 잡지 <데어 슈피겔>(Der Spiegel) 역시 같은 견해를 게재했습니다.
그러나 RND에 따르면 2011년 토비아스가 사망한 후 그의 유물에서 레닝스의 진술서 사본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저자의 주장과 정면으로 모순되었기 때문에 생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