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리는 패배를 예고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1703년 6월 30일 벌어진 에케렌 전투(Battle of Ekeren)는 인류의 '제2차 세계대전'이라 불릴 만했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전투 중 가장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전투 중 하나다. 다수가 소수를 섬멸하고 승리해야 한다는 논리가 통했어야 할 이 전투는, 정작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발발
전쟁의 발단은 17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만한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는 스페인 국왕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자신의 손자를 스페인 왕좌에 앉혀 스페인을 프랑스의 영향권 아래 두려 했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서유럽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강력한 동맹이 탄생한다는 뜻이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잉글랜드,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프로이센 등 여러 나라가 연합하여 프랑스에 맞섰다. 가장 중요한 전역은 플란데른(오늘날 벨기에 지역)이었다.
양측의 기동
1703년 5월, 당시 말버러 공작 1세였던 영국의 위대한 장군 존 처칠(John Churchill)은 연합군 총사령관으로서 현재 벨기에에 위치한 오스텐더 점령을 결심했다. 이를 위해 그는 병력을 그곳에 집중시키고 광범위한 지역에는 소규모 엄호 부대만 남겨두었다.
한편 네덜란드의 야코프 반 옵담(Jacob van Obdam) 장군은 약 10,693명의 병력을 이끌고 안트베르펜에서 북쪽으로 약 7km 떨어진 에케렌에 진지를 구축했다. 서열 2위는 역시 네덜란드 출신의 프레데릭 요한 반 슬랑엔부르크(Frederik Johan van Slangenburg) 중장이었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이 소규모 네덜란드 부대를 발견했고, 지휘관 빌루아(Villeroy) 원수는 공격을 결정했다. 그는 프랑스군과 스페인군 합쳐 40,000명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스페인군은 베드마르 후작(Marquis of Bedmar)의 지휘 아래 있었다.
전투의 시작
1703년 6월 30일 새벽, 프랑스군이 전장에 도착했다. 적의 소규모 병력을 확인한 빌루아는 이들을 포위해 완전히 섬멸하기로 했다. 그래서 드래군(dragoon, 당시 하마 보병을 겸한 기병) 사단에게 네덜란드군 남쪽으로 이동해 모든 탈출로를 차단하라고 명령했다.
동시에 나머지 병력은 정면과 측면에서 네덜란드군을 포위했다. 함정임을 깨달은 네덜란드군은 탈출을 시도했다. 옵담은 기병에게 포위선 돌파를 명령했지만 이미 때늦었다. 그의 작은 부대 주위에는 '철의 고리'가 완성되어 있었다.
네덜란드군이 격퇴되자 프랑스군과 스페인군이 공격해 들어왔다. 그러나 결실은 없었다. 내부선(internal lines)을 따라 끊임없이 기동한 수세에 몰린 네덜란드군은 '사각형' 방어선의 위협받는 구역마다 항상 충분한 병력을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네덜란드군이 사용한 발사 방식('플래툰' 단위 사격)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전투가 길어지면서 탄약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네덜란드군은 총검으로 계속 싸웠다.
포위선 돌파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옵담 장군이 행방불명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간단히 말해 옵담은 완전히 용기를 잃었고, 프랑스군 제복으로 갈아입은 채 싸우는 병사들을 버리고 30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도주한 것이다.
돌아온 그는 심지어 적 다수에게 부대가 궤멸되었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모든 논리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휘하던 부대는 궤멸되지 않았다. 슬랑엔부르크 중장은 끝까지 용기를 유지했고, 지휘를 이어받아 새로운 포위선 돌파를 시도하기로 했다.
네덜란드군은 오르더른(Oorderen) 마을 공격을 선택했다. 그들은 프랑스군이 공격을 예상하지 못한 관개 운하와 시내를 건너, 절박함에서 나오는 힘으로 총검 돌격을 감행했다. 마을에서의 전투는 특히 피비린내 나는 것이었지만, 결국 다른 프랑스군과 스페인군이 배후를 타격하기 위해 움직이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네덜란드군은 탈출에 성공했다.
결과와 교훈
네덜란드군은 8,000명 이상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승리를 선언한 프랑스군은 약 3,000명의 손실을 입었다. '패배한' 네덜란드군은 오히려 프랑스 대포 1문과 군기 17개를 노획했다. 프랑스군은 1,200명 전사, 같은 수의 부상자, 그리고 다수의 실종자를 냈다. 네덜란드군은 700명 전사, 1,000명 부상, 700명 포로를 기록했다.
물론 옵담은 군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나 그는 마땅히 받아야 할 응징을 받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