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미군 역사상 마지막 기병 돌격 — 1942년 1월 16일, 램지 중위와 26 필리핀 스카우트 연대

미군 역사상 마지막 기병 돌격 — 1942년 1월 16일, 램지 중위와 26 필리핀 스카우트 연대

미국 기병이라고 하면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린다. 권총과 카빈총, 검을 들고 인디언들을 향해 말을 몰아 달리는 기병들의 모습 말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중, 실제 전장에서 영화 같은 기병 돌격이 벌어진 사례가 단 한 번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당시 기병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병종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참전 국가 중 가장 기계화가 앞선 미군조차 소수의 승마 연대만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제26 필리핀 스카우트(기병)연대였다.

제26연대는 1922년 필리핀에서 창설되었으며, 병력은 미국인과 필리핀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41년 초 기준으로 연대는 837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기관총은 갖추고 있었지만 박격포나 대전차 무기는 전무했다.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이 참전하자, 제26연대는 마닐라 북부에 주둔했으며 F중대만 예외적으로 마닐라 남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포병 부대의 지원을 받은 제26연대는 필리핀 루손 섬에서 일본 침략군과 맞서 싸웠고, 단 5일간의 전투에서 병력의 4분의 1과 말의 절반을 잃었다. 이후 연대는 맥아더 장군 휘하의 다른 부대들과 함께 바탄 방면으로 점차 후퇴해갔다.

한편 에드윈 램지(Edwin Ramsey) 중위가 지휘하는 F중대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에게 모롱(Morong) 마을 확보 임무가 내려졌다. 미군 사령부는 일본군이 아직 이 마을을 점령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으나,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기습 돌격

램지는 부대를 이끌고 마을로 진격했다. 그러나 마을에 진입하기 전 먼저 정찰을 실시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직접 27명으로 구성된 분견대를 이끌고 적진으로 향했고, 그 눈으로 확인한 것은 마을 곳곳에 가득 찬 일본 병사들이었다. 충격을 받았지만, 그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일본군에게 미국 기병의 돌격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점에 착안한 그는 즉시 전진을 명령했다! 미군 기병대는 이미 1934년에 사브르(군도)를 반납한 상태였다. 결국 이 돌격은 말 위에서 콜트 권총으로 감행되었다.

미국인과 필리핀인 병사들은 고함을 지르며 돌진했고, 근접 거리에서 퍼붓는 화망을 맞은 일본군은 완전히 혼란에 빠져 도주했다. 일본군은 마을을 포기하고 물러났으며, 램지는 곧바로 전 병력을 저격 진형으로 배치해 우군 증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마을을 5시간 동안 사수했다.

그러나 결국 일본군은 바탄에서 연합군을 격퇴했고, 연대는 해체되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를 지닌 램지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후 몇 년간 필리핀 게릴라 부대를 이끌며 저항을 계속했고, 1945년 1월 미군이 루손 섬을 해방할 때까지 버텼다. 긴 항전 기간 동안 그의 몸무게는 고작 42kg까지 줄어들었다...

이것이 미국 역사상 마지막으로 말 위에서 싸운 병사들의 이야기다. 물론 2001년 10월 22일, 12명의 미국 특수부대 요원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말을 타고 작전을 수행하기 전까지의 이야기지만.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미군 역사상 마지막 기병 돌격 — 1942년 1월 16일, 램지 중위와 26 필리핀 스카우트 연대

램지 중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