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대와 프랑스의 지배
아메리카 대륙에 건설된 스페인의 첫 번째 식민지였던 산토도밍고는 1795년 프랑스-스페인 조약에 따라 프랑스의 지배下에 놓였습니다. 이후 1800년에는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가 이끄는 해방 노예들로 구성된 군대가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상황이 크게 변화했습니다.
스페인의 재진입과 팔로힌카도 전투
나폴레옹의 군대가 산토도밍고 동부(오늘날의 도미니카 공화국)를 다시 탈환했지만, 후안 산체스 라미레스(Juan Sánchez Ramírez)가 1808년 팔로힌카도(Palo Hincado)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하며 국면이 전환되었습니다. 증가하는 아이티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스페인은 그를 총독으로 임명했습니다.
첫 독립 선언과 아이티의 침공
산체스 라미레스가 사망한 후, 그란 콜롬비아(Gran Colombia)의 지원을 받은 호세 누녜스 데 카세레스(José Núñez de Cáceres)는 1821년 12월 1일 도미니카 공화국(산토도밍고)의 독립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의 군사적 영향력이 사라진 틈을 타 아이티의 장 피에르 부아예(Jean Pierre Boyer)가 영토 침공의 기회를 포착했고, 1822년부터 1844년까지 가혹한 독재 통치가 이어졌습니다.
라 트리니다리아와 무장 봉기
아이티의 폭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미니카 애국자들이 결성한 비밀결사 '라 트리니다리아(La Trinitaria)'의 활동 덕분에 부아예는 1844년 마침내 축출되었습니다. 후안 파블로 두아르테(Juan Pablo Duarte)가 이끄는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고, 프란시스코 델 로사리오 산체스(Francisco del Rosario Sánchez)가 수도에서 무장 봉기를 일으켜 총독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두아르테는 새로운 통치 위원회를 구성하고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내부 분열과 페드로 산타나의 집권
독립 국면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지만, 통치 위원회는 완전한 독립파와 프랑스 또는 스페인 보호령화를 추구하는 세력으로 분열되며 갈등을 빚었습니다. 페드로 산타나(Pedro Santana) 장군은 새롭게 독립한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스페인 병합 시도와 최종적 독립 확립
아이티의 재침공 위협에 직면하자, 바에스(Báez)와 발베르데(Valverde)의 대통령 재직 기간 이후 재선된 산타나 대통령은 스페인에 영토 병합을 요청했고(1861년 3월 18일), 이는 1865년 멜야(Mella)와 루페론(Luperón) 등 애국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철회되었습니다. 이후 두아르테가 망명지에서 귀환하면서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립은 드디어 확고하게 다져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