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 사냥 작전(Operation Heads)'은 1943~44년 나치 독일에 점령된 폴란드에서 폴란드 저항세력이 게슈타포(Gestapo)와 SS 등 독일 점령당 요원들을 표적으로 벌인 실존하는 '헤드헌팅' 작전이다. 이는 독일의 만행에 대한 폴란드의 강력한 응수였다. 당시 폴란드에서는 하루에만 최소 400명의 폴란드인이 독일 점령당에 의해 체포되고 있었다.
나치의 테러에 대한 응답
체포된 이들 가운데 수천 명은 재판조차 없이 즉결 처형되었다. 대표적인 곳이 바르샤바의 파비아크(Pawiak) 감옥으로, 이곳에서만 약 37,000명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폴란드 최대의 지하 저항조직인 국내군(AK, Home Army)은 반격을 결심한다. 표적으로 삼은 것은 SS와 SA 요원, 게슈타포 스파이, 그리고 점령 행정 관료들이었다.
파비아크 감옥 소장 비르클 사살
1943년 9월 7일, 폴란드 저항세력은 파비아크 감옥 소장 프란츠 비르클(Franz Bürkl)을 사살했다. 그들은 바르샤바의 한 대로변에서 대낮에 비르클을 매습해 공격했다.
스텐 기관단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AK 요원 다섯 명은 비르클과 동행하던 호위 병력 일곱 명을 덮쳤다. 작전 전체는 단 90초 만에 종료되었고, 독일인들은 모두 사살되었으며 폴란드 측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보복으로 독일군은 폴란드인 인질 20명을 처형했다.
표적은 계속되었다
같은 해 9월 24일에는 게시우프카(Gęsiówka) 수용소 소장이자 SS 대위인 크레치만(Kretschmann)이 처형되었다. 이어 핵심 요직의 SS 장교들이 잇달아 숙청되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1944년 2월 1일 SS 중장 프란츠 쿠체라(Franz Kucera)의 암살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이 학살자 제거 작전은 폴란드 저항세력의 특수 부대 '아가트(Agat)' 계열, 그중에서도 AK의 '파라솔(Parasol)' 대대가 맡았다.
쿠체라 암살 작전의 전말
폴란드 측은 1944년 1월 28일 먼저 쿠체라 암살을 시도했지만, '표적'이 그날 집에서 나오지 않아 실패했다. 그러나 2월 1일에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갔다. 브로니스와프 피에트라셰비치(Bronisław Pietraszewicz)가 이끄는 '파라솔' 대대 1소대 소속 남녀 12명으로 구성된 팀은 그 처형자가 집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렸다.
팀원 중 한 여성이 근처에 서서 상황을 살폈다. 쿠체라가 나오는 순간 그녀는 작전 개시 신호를 보냈다. 쿠체라는 리무진에 올라 SS 본부로 향했지만, 도착하기도 전에 한 대의 차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차에서 내린 두 명의 폴란드인은 근거리에서 기관단총 탄창을 통째로 쿠체라와 운전사에게 쏟아부었다. 그들은 확인 사격까지 남긴 뒤 서류 가방에서 문서들을 빼앗아 갔다.
독일의 잔혹한 보복
독일 SS 경호원들도 두 폴란드인에게 사격을 개시했고, 폴란드 팀의 다른 대원들이 응사했다. 폴란드인 세 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팀은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피에트라셰비치를 포함한 부상자 두 명은 며칠 후 사망했다.
또 다른 두 대원은 추격을 피해 비스툴라강으로 뛰어내리려다 발각되어 살해당했다. 독일군은 신원이 드러난 사망자 한 명의 가족마저 처형했다. 쿠체라 처형에 대한 보복으로 독일은 무려 300명의 폴란드인 인질을 살해했다.
약 100개의 이름이 적힌 처형 명단
이 외에도 숙청된 독일인들로는 파비아크 감옥에서 여성들을 잔혹하게 처형하기로 악명 높았던 SS 장교 에른스트 베펠스(Ernst Weffels), 첩보기관 아브베어(Abwehr) 요원 알브레히트 아이트너(Albrecht Eitner), 폴란드인들을 독일 공장으로 강제 징용하던 빌리 리베르트(Willi Liebert), 폴란드인과 유대인의 추방과 학살을 담당했던 카를 프레다엔탈(Karl Fredenthal) 등이 있다.
폴란드 저항세력은 이미 처형 대상 독일인 약 100명의 명단을 작성해 둔 상태였다. 동시에 점령자에 대한 공격은 계속되었고, 바르샤바 지역만 하루 평균 최소 10명의 독일인이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