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스피에르는 직접 처형 명령을 내렸을까?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는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단두대로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기 가장 어두운 시기인 공포정치(1793~1794) 동안, 로베스피에르가 핵심 인물로 활동한 공공안전위원회는 '혁명의 적'으로 지목된 수천 명의 체포와 처형을 총괄했습니다.
단두대로 보내진 사람들은 누구였나?
처형 대상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포함되었습니다.
- 구체제(앙시앵 레짐) 출신의 귀족
- 성직자들
- 구 왕정의 전직 관료
- 반혁명을 지지하거나 공화국에 대한 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받은 모든 사람
당시에는 혁명에 대한 충성 여부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실제 반혁명 세력뿐 아니라 단순히 의심만 받은 무고한 사람들까지 다수 희생되었습니다.
재판과 처형 절차
체포된 희생자들은 혁명재판소(Revolutionary Tribunal)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유죄 판결을 받으면 단두대로 끌려갔습니다. 이 시기의 재판은 극도로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피고인에게 충분한 변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포정치 기간 동안 프랑스 전역에서 약 1만 7천 명이 공식적으로 처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흥미롭게도 로베스피에르 본인도 1794년 7월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권력에서 축출된 뒤, 자신이 상징이던 바로 그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