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식민 사회의 정점, 페닌술라레스
스페인이 누에바 에스파냐(오늘날의 멕시코)를 통치하던 식민 시대에 행정부와 가톨릭 교회의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한 그룹은 바로 페닌술라레스(peninsulares)였습니다. 페닌술라레스는 이름 그대로 이베리아 반도, 즉 스페인 본토에서 태어나 신대륙으로 건너온 스페인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총독(비레이)과 아우덴시아 판사 같은 식민지 정부의 핵심 요직은 물론, 주교와 대주교를 포함한 교회의 고위 성직 역시 대부분 이들에게 독점되었습니다. 스페인 왕실은 식민지에 대한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요직을 오직 반도 출신 인사에게만 맡겼기 때문입니다.
'가추피네스'라는 별칭의 유래
식민지에서는 크리오요(식민지 태생 스페인계 백인)와 원주민들이 이들을 가추피네스(gachupines)라고 불렀습니다. 이 명칭은 나우아틀어 단어 '샤칼리(xacalli)', 즉 "모래 언덕 위에 지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일각에서는 스페인 기병들이 착용하던 박차가 내는 소리에서 이름이 나왔다는 설도 제기됩니다. 어원과 무관하게 '가추피네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특권층 스페인인을 견제하고 비꼬는 뉘앙스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때로는 멸칭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식민지 사회 피라미드와 갈등의 씨앗
누에바 에스파냐의 사회 구조는 매우 엄격한 위계 질서로 짜여 있었습니다. 최상층에는 페닌술라레스가 위치했고, 그 아래로 식민지 출신 스페인계인 크리오요, 메스티소(혼혈), 원주민, 아프리카 출신 노예 순으로 위계가 이어졌습니다.
아무리 능력과 재산을 갖추어도 크리오요는 고위 관직과 주교 임명에서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차별에 대한 불만은 19세기 초 멕시코 독립 운동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결국 페닌술라레스의 독점적 특권은 식민 체제를 지탱하는 기둥인 동시에, 그 붕괴를 부르는 씨앗이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