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6월 25일, 미국 몬태나의 리틀 빅혼 강변에서 미국 육군 제7기병연대와 라코타·북부 샤이엔 연합 부대 사이에 역사적인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연방군을 지휘한 것은 인디언 전쟁의 영웅으로 명성이 높았던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George Armstrong Custer)였습니다.
흔히 커스터가 시팅 불(Sitting Bull)과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라는 두 추장을 '이기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실제 결과는 훨씬 처참했습니다. 커스터가 직접 지휘한 부대는 거의 전멸했고, 커스터 본인도 전사했습니다. 이 전투는 오늘날까지 '커스터의 최후의 저항(Custer's Last Stand)'으로 회자되며, 미국 서부 개척사의 상징적인 패배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때 남북전쟁의 영웅이었던 커스터는 어떤 실수 때문에 이런 참패를 당하게 되었을까요?
실수 1 — 압도적으로 많은 적의 규모를 과소평가했다
전투 직전 리틀 빅혼 계곡에는 수천 명에 달하는 원주민이 모여 있었습니다. 시팅 불의 태양 춤(선 댄스) 이후 여러 부족이 대거 합류해, 전사의 수만 해도 1,500명에서 2,000명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반면 커스터의 제7기병연대 전체 병력은 약 600명에 불과했습니다.
정찰병과 스카우트들은 여러 차례 "원주민 진영이 예상보다 훨씬 크다"고 경고했지만, 커스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원주민들이 자신의 접근을 감지하면 흩어져 도망칠 것이라 믿었고, 기습의 효과를 잃을까 봐 오히려 공격을 서두르려 했습니다.
실수 2 — 병력을 셋으로 나눠 지원 불가능한 상태를 만들었다
당초 작전 계획은 테리 장군과 기번 장군이 이끄는 다른 부대들과 협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커스터는 공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탓인지 지원 부대를 기다리지 않고 단독으로 진격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전투 당일 연대를 세 개 부대로 분할한 일입니다. 리노 소령과 벤틴 대위가 이끄는 부대는 하류 쪽에서 진영을 공격했다가 곧 포위당해 큰 피해를 입었고, 커스터 자신이 이끄는 약 200명의 대대는 북쪽 능선에서 고립된 채 수 배에 달하는 원주민 전사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병력을 나눈 결과, 어느 부대도 서로를 지원할 수 없었습니다.
실수 3 — 철저한 정찰 없이 성급하게 돌진했다
커스터는 행군 내내 부대를 몰아세워 병사들을 지치게 했고, 목표 지점 근처에서 원주민 진영의 존재가 발각되자 지형과 적의 배치를 파악할 시간조차 갖지 않은 채 즉시 공격을 결심합니다. 그의 부대는 예상보다 훨씬 많고 조직적인 저항에 부딪혔으며, 특히 크레이지 호스가 이끄는 전사들이 측면을 돌파하면서 전황은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참패가 남긴 교훈
리틀 빅혼 전투는 단순한 전술적 실패를 넘어 하나의 교훈을 남겼습니다. 정보를 무시하고, 적을 얕보며, 지원 없이 단독으로 나선 공격은 아무리 용맹한 지휘관이라도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승리한 원주민 연합군의 기쁨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대규모 보복 작전에 나섰고, 원주민들의 저항은 몇 년 안에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시팅 불과 크레이지 호스가 이끈 이 승리는, 자신들의 땅과 삶의 방식을 지키려 했던 원주민들의 마지막 대규모 저항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