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대왕, 어떻게 웨식스의 왕이 되었을까?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알프레드 대왕(849~899)은 871년, 형인 애설레드 1세(Æthelred I)가 세상을 떠나면서 웨식스 왕국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형의 뒤를 이었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즉위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알프레드가 왕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지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이유: 계승할 만한 성년 남성 상속인의 부재
애설레드 1세에게는 물론 아들이 있었지만, 두 아들 모두 나이가 어려 바이킹의 침공으로 나라가 극심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국정을 맡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웨식스 왕조의 시조이자 명군인 에그버트 왕(King Egbert of Wessex)의 직계 혈통 안에서 성년이고 통치 경험이 있는 남성은 알프레드뿐이었습니다. 왕국의 존망이 걸린 시점에서 왕위가 알프레드에게 돌아온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 전장에서 입증된 용맹함과 지도력
두 번째 이유는 알프레드 자신이 이미 왕으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아버지 애설울프(Æthelwulf)와 형 애설레드의 재위 기간 동안 수차례 전역에 참전하며 왕실의 연장자로서 활약했습니다. 특히 871년에는 형과 함께 바이킹 대군에 맞서 싸우며 뛰어난 용맹함과 지휘 능력을 입증했고, 이러한 공로는 귀족들과 백성들의 깊은 신뢰를 얻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위기의 시대가 요구한 통치자
당시 웨식스는 덴마크 바이킹의 끊임없는 침공으로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왕국에는 어린 군주가 아니라 전장 경험과 카리스마를 갖춘 성인 남성 통치자가 절실했습니다. 알프레드는 왕실 내 연장자이자 검증된 전사로서, 그 시대가 요구하는 조건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알프레드의 즉위는 단순한 우연한 계승이 아니라, 혈통·능력·시대적 요구가 정확히 일치한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옳았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알프레드는 에딩턴 전투에서 바이킹을 격파하고 잉글랜드를 통일의 길로 이끌었으며, 그 공로로 잉글랜드 역사상 유일하게 '대왕(the Great)'이라는 칭호를 얻은 군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