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의 우호적인 관계
1607년 제임스타운에 정착한 영국인들과 주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관계는 처음에는 비교적 원만했습니다. 바다를 건너온 식민지 개척자들은 낯선 환경 속에서 생존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에 옥수수와 곡물 등 식량과 필수 물자를 원주민들에게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포우하탄 연합을 중심으로 한 원주민들 역시 영국인들이 가진 철제 도구, 무기, 유리구슬 같은 물품에 관심이 있었기에 상호 교역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갈등의 씨앗: 토지와 자원을 둘러싼 마찰
그러나 이러한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계속 늘어나는 이민자들이 담배 재배지를 넓히기 위해 원주민들의 땅과 사냥터, 어장을 잠식하기 시작하면서 양측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문화와 종교, 가치관이 전혀 다른 두 집단 사이의 오해도 누적되었고, 교역 관계는 점차 적대적인 관계로 변해갔습니다.
1622년 학살, 그리고 긴 항쟁의 시작
결정적 전환점은 1622년 찾아왔습니다. 오페찬카노(Opechancanough)가 이끄는 포우하탄 원주민들이 제임스타운 일대의 영국인 정착촌들을 기습 공격하여 약 347명의 식민지 주민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이 사건은 '1622년 인디언 학살(Jamestown Massacre)'이라 불리며, 이후 버지니아에서 영국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 벌어질 길고 피비린내 나는 충돌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이후 1644년의 대규모 공격 등 갈등이 반복되면서 원주민들은 점차 자신들의 땅을 잃어갔고, 두 집단의 관계는 회복되기 어려운 수준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