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8세기 대서양 노예 무역을 주도한 식민지는 어디였을까?

정답: 로드아일랜드와 뉴포트

18세기 북미 식민지 가운데 대서양 노예 무역을 주도한 곳은 바로 로드아일랜드(Rhode Island), 특히 그 중심 항구 도시인 뉴포트(Newport)였습니다.

1700년부터 1775년까지 뉴포트에 거점을 둔 상인들은 노예 무역에 투입된 로드아일랜드 선박 전체의 약 40%를 소유했으며, 뉴잉글랜드 지역 전체 노예 무역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뉴포트는 작은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노예 무역의 규모 면에서는 영국 본토의 리버풀이나 브리스틀과 견줄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구였습니다.

뉴포트가 노예 무역의 중심이 된 이유

뉴포트 상인들은 '삼각 무역(triangular trade)'이라 불리는 해상 교역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뉴잉글랜드에서 생산된 럼주를 서아프리카로 운송해 노예와 교환하고, 노예들을 서인도제도(카리브해)로 팔아 당밀을 확보한 뒤, 다시 이 당밀을 뉴포트의 증류소로 들여와 럼주를 만드는 순환 구조가 그 핵심이었습니다.

1770년경 뉴포트에는 수십 곳의 럼 증류소가 가동되고 있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럼주가 노예 매매의 사실상 결제 수단 역할을 하면서 뉴포트 경제 전체가 노예 무역과 깊이 맞물려 있었습니다.

무역의 규모와 종말

식민지 시대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들이 아프리카로 보낸 노예 수송선의 상당수, 일부 추산으로는 60%에서 90%에 이르는 선박이 로드아일랜드 출신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독립혁명을 전후해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1774년 로드아일랜드는 노예 수입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1787년에는 주민들이 노예 무역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하며 이 거대한 무역에서 손을 뗐습니다. 이후 뉴포트의 항구는 노예 무역이 아닌 새로운 해상 무역의 거점으로 그 성격을 바꾸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