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대분화로 단 하루 만에 파괴된 로마 제국의 도시, 폼페이. 그 참사 속에서 생존한 사람은 과연 몇 명이었을까요?
생존자는 약 2,000명으로 추정
연구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폼페이 화산 폭발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대략 2,000명 정도입니다. 다만 이들 중 일부는 분화를 견뎌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입은 부상이나 화산재 흡입으로 인해 결국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민 2만 명 중 약 1만 명은 사전 탈출
당시 폼페이의 인구는 약 2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이 가운데 약 1만 명은 본격적인 분화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도시를 떠났습니다. 분화에 앞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지진과 화산 활동의 전조를 눈치챈 주민들이 미리 피난을 결심한 덕분입니다.
도시에 남은 이들의 비극
반면 도시에 남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운명은 처참했습니다. 수백 도의 뜨거운 열기와 화산재, 유독가스가 빠른 속도로 사방을 덮치는 '화쇄류(pyroclastic flow)'가 도시를 강타하면서 많은 이들이 그 자리에서 생명을 잃었습니다. 화쇄류를 간신히 피했다 하더라도, 두꺼운 화산재와 질식성 가스로 인해 이후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유적이 전하는 당시의 기록
오늘날 폼페이 유적 발굴을 통해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화산재에 갇힌 채 굳어버린 신체 자리에 석고를 부어 넣어 만든 '석고 주형'은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 보였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또한 생존자 중 한 명인 소(小) 플리니우스가 목격한 분화 상황을 상세히 기록한 편지는, 이 재난을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1차 사료로 꼽히며, 오늘날 이러한 유형의 대분화를 '플리니식 분화'라고 부르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결국 폼페이의 역사는 약 2만 명의 주민 가운데 절반가량이 조기 피난으로 목숨을 구했고, 도시에 남았던 이들 중 극소수만이 그대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천재지변 앞에서 신속한 판단과 대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