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아(Semois) 계곡 한가운데, 작은 마을 부용(Bouillon)을 감싸듯 거대한 성벽이 바위 능선 위로 솟아 있습니다. 벨기에에서 가장 크고 가장 인상적인 요새입니다. 이곳의 명성은 제1차 십자군에서 예루살렘 함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도 왕관을 거절한 인물, 고드프루아 드 부용(Godefroy de Bouillon) 덕분입니다. 그는 1096년 성지 원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성을 팔았고, 이 성은 이후 보방(Vauban) 등에 의해 여러 차례 개축되며 오늘날 군사 건축의 놀라운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중세의 전략적 요충지, 부용
벨기에로 통하는 주요 도로변에 자리한 덕분에 부용 일대는 고대부터 요새화되었습니다. 세무아 강이 그리는 넓은 만곡을 내려다보는 긴 바위 능선 위의 봉건 모트(motte)는 8세기에 빠르게 성장했고, 11세기에는 진정한 거점으로 발전합니다. 실제로 고드프루아 드 부용은 십자군에 나서기 몇 해 전, 구불구불한 강을 굽어보는 가파른 암반 위에 두 번째 요새를 세워 바위 기슭에 형성된 작은 시장 마을을 보호했습니다.
이 성은 리에주의 후작-주교에게 매각되어 프랑스군이 도래하기 전까지 그들의 소유로 남았습니다. 부용 마을은 중세와 근세를 거치며 대체로 프랑스 왕국의 보호와 권위 아래 놓인 작은 공국의 중심지였습니다. 리에주의 후작-주교가 성을 소유하고 공작 작위를 주장했지만, 분쟁이 벌어지면 프랑스 왕은 주저 없이 찬탈자의 편에 서곤 했습니다.
근세를 거치며 끊임없이 강화된 요새
프랑스의 영향력이 항상 유지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16세기에는 카를 5세(Charles V)의 군대가 성의 일부를 점령하고 파괴했으며, 성은 곧바로 재건되고 보강되었습니다. 1677년 네덜란드 전쟁 중에는 리에주 주교가 프랑스 왕 루이 14세에 맞서 성을 군사적으로 점령했습니다. 보방은 이 기회를 활용해 요새를 현대화했습니다. 세 개의 도개교로 연결되는 새로운 입구 요새를 설치하고, 무기고와 화약고, 장교 숙소를 새로 지었습니다.
19세기 초부터 20세기에 걸쳐 요새를 점유한 네덜란드인들이 새로운 공사에 착수하면서, 그때까지 남아 있던 중세 성채(keep)는 철거되고 말았습니다.
샤토 드 부용(Château de Bouillon) 관람 안내
성 관람은 다리로 연결된 요새를 건넌 뒤 표지판이 안내하는 동선을 따라 진행됩니다. 현재의 모습은 주로 16세기부터 네덜란드 시대까지 이루어진 증축과 개보수에서 비롯되었지만, 중세 건축을 사랑하는 방문객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곳입니다. 시멘트나 모르타르 없이 쌓아 올린 보방의 계단을 감상할 수 있는가 하면, 12세기에 지어진 소위 '원시적(primitive)' 방들을 지나 13세기에 바위를 깎아 만든 '고드프루아 드 부용의 방'으로 이어지는 동선도 큰 매력입니다.
그 밖에도 지하 감옥, 고문실, 지하 통로 등 성에서 기대할 수 있는 클래식한 볼거리가 가득합니다. 1551년에 착공된 오스트리아 탑에 오르면 성은 물론 부용 시내와 세무아의 푸른 계곡까지 펼쳐지는 절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름철에는 메인 안뜰에서 열리는 매사냥 쇼가 관람의 마무리를 완벽하게 장식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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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용 성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