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색소를 드러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이집트 공책(Notebooks of Egypt)' 시리즈 6번째 이야기입니다. 테베(Thebes) 지역 무덤 벽화를 연구하는 조사단이 이집트 무덤 벽화의 엄밀한 연구를 가능하게 만드는 과학적 영상 기법들을 상세히 소개합니다. 이러한 기법들은 화가들의 작업 방식에 관한 수많은 세부 정보를 밝혀내는 열쇠가 됩니다.
![[이집트 공책] 빛으로 색소를 드러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215571159.jpg)
초분광(hyperspectral) 이미지 촬영 장치: 이 기술은 영상화(imaging)와 분광학(spectroscopy)을 하나로 결합합니다. 일반적인 카메라가 적색·녹색·청색의 세 가지 색 대역으로만 이미지를 기록하는 반면, 초분광 영상 기술은 가시광선부터 근적외선까지(400nm~1000nm) 매우 많은 수의 파장 대역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영상 기법은 일상 곳곳에서 매일 그 성능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범죄 현장에서 자외선을 활용하거나 의료 진단에 X-ray를 사용하는 것은 이미 경찰과 의사에게 익숙한 관행이 되었죠. 룩소르(Luxor)의 이집트 무덤 벽화를 탐사하는 이번 연구팀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소르본대학교- CNRS 분자·구조 고고학 연구소(LAMS)와 리에주대학교 유럽 고고측정 센터가 공동으로 구성한 이 팀은, 적외선을 감지할 수 있도록 개조한 카메라와 함께 빛이 안료에 의해 산란되는 방식을 극도로 정밀하게 측정하는 초분광 분석 장비를 선택했습니다.
![[이집트 공책] 빛으로 색소를 드러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215571247.jpg)
초분광 이미지 촬영 장치: 영상화와 분광학을 결합한 기술로, 일반 카메라의 RGB 3대역과 달리 가시광선부터 근적외선(400nm~1000nm)까지 수많은 파장 대역을 측정할 수 있다. ©MAFTO-LAMS/CNRS
탄소 블랙은 가시광선과 적외선을 모두 흡수한다
화가들이 사용한 안료 가운데 하나인 탄소 블랙(carbon black)은 이러한 기법으로 얻은 영상에서 쉽게 드러납니다. 탄소가 측정에 쓰이는 가시광선과 적외선을 거의 완전히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회화층 아래에 숨어 있는 검은 선들을 관찰할 수 있고, 흔적만 남아 있는 경우에도 그 존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회화층이 창작된 지 약 3,500년이 지난 지금도 놀랍도록 잘 보존되어 있는 반면, 검은 선에서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페인트가 벽에서 벗겨져 나간 것처럼 보이고 유령 같은 흔적만 남아 있는 것이죠. 그 결과 상형문자 텍스트를 읽기가 매우 어려워지고, 인물 윤곽의 일부는 완전히 사라지기도 합니다. 다행히 사진, 더 나아가서는 초분광 영상에 대한 통계적 처리를 통해 사라진 문자들을 다시 복원해낼 수 있습니다.
![[이집트 공책] 빛으로 색소를 드러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215571286.jpg)
나크타몬(Nakhtamon) 무덤 벽면 중 하나의 사진. 초분광 영상 처리를 통해 현재 거의 사라진 상형문자 대부분을 읽어낼 수 있었다. ©MAFTO-LAMS/CNRS
파란색은 적외선으로 보면 된다
이집트 청(Egyptian blue) 안료는 광물 물질로서는 극히 드문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가시광선으로 비추면 적외선을 방출한다는 것입니다. 이 현상을 '발광(luminescence)'이라고 부르는데, 그 세기가 너무 강해서 파란색이 육안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더라도 이 안료의 미량까지도 검출할 수 있습니다.
이 독특한 특성은 이제 새로운 기술적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통신 분야에서 증폭기로 활용하거나 레이저 제조에 응용하는 방안이 연구되고 있는데요. 실제로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 에너지부의 연구자들은 학술지 Journal of Applied Physics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집트 청을 산업용 페인트에 활용하면 햇볕에 노출된 지붕을 식혀 에어컨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물리학자와 화학자들이 과거에 발명된 재료에 주목해 놀라운 새로운 응용처를 찾아내고 있는 셈입니다.
이 원리를 이집트 무덤 연구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적외선을 방출하지 않는 LED 램프로 벽화를 비추면, 적외선을 감지하도록 개조된 카메라가 발광 현상을 통해 이집트 청 안료를 신속하게 포착합니다. 이렇게 얻어진 영상은 벽면 위에서 이 안료가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집트 공책] 빛으로 색소를 드러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215571202.jpg)
심장 계량 심판에서 승리한 나크타몬: 고대 이집트인에게 심장은 감정과 결정의 중심이었다. 죽음의 순간 심장은 깃털보다 가벼워야 했다. 이 시련을 통과한 나크타몬은 날개짓과 함께 떠오르며, 오시리스(Osiris) 앞에서 정당함이 입증되고 반신적인 존재로 변모한다. ©MAFTO-LAMS/CNRS
![[이집트 공책] 빛으로 색소를 드러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215571372.jpg)
동일 장면의 적외선 영상: 흰색은 발광하는 이집트 청, 검은색은 모든 적외선을 흡수하는 탄소 블랙이다. 화가는 날카로운 터치의 파란색으로 나크타몬의 날개 움직임이 일으킨 공기를 표현했다. ©MAFTO-LAMS/CNRS
'이집트 공책' 시리즈 전체 목록
1화: 고대 이집트 화가들은 어떻게 작업했을까?
2화: 나크타몬의 매장 예배당 발견하기
3화: 이집트 회화의 안료들
4화: 채색 벽면의 현대적 기록화
5화: 람세스 2세의 영원한 기념물 재발견
6화: 빛으로 안료 드러내기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7화: 영상으로 경험하는 연구 현장
8화: 네브아몬(Nebamon)과 이푸키(Ipouky) 무덤 벽화 연구의 시작
9화: 아멘호텝 3세 시대, 두 화가가 함께 쓴 무덤
10화: 고대 이집트 화가 아메누아수(Amenouahsou)의 무덤이 말해주는 것
11화: 이집트 미라의 기이한 용도들
12화: "왜 모든 화가들이 여기 오지 않을까?"
13화: 왜 이집트인들은 인물을 옆모습으로 그렸을까?
14화: 이집트 무덤 속 장인 기술 관찰하기
15화: 이집트 향수에 대하여
16화: 이집트 팔레트의 색들
17화: 이집트어에는 '예술'을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
18화: 이집트에서의 과학 조사단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