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고학자 팀이 미시시피에서 유럽산 금속 유물 80점 이상을 발굴했습니다. 연구진은 이 유물들이 600명이 넘는 병력과 말, 돼지로 구성된 에르난도 데 소토(Hernando de Soto)의 원정대 소유였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치카소족(Chickasaw)이 이 물건들에 새로운 용도를 부여해 자신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윌리엄 헨리 파월(William Henry Powell)이 1855년에 그린 그림으로, 1541년 에르난도 데 소토의 부대가 미시시피에 도달해 아메리카 원주민 민족과 조우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북아메리카 정복의 시작, 그리고 희박한 단서
1539년, 잉카 제국 정복의 핵심 인물이자 당시 쿠바 총독이었던 에르난도 데 소토(1500~1542)는 북아메리카 정복에 나섰습니다. 이 원정은 귀환 후 일부 대원들이 남긴 기록들을 통해 문서화되어 있지만, 데 소토 일행이 실제로 거친 정확한 경로는 오늘날까지도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입니다. 지금까지 학계는 문서 기록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매우 드문 고고학적 발견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치카소족은 원래 미시시피 북동부 지역에 살던 원주민으로, 1837년 미국 정부에 의해 오클라호마로 강제 이주당한 민족입니다. 그들은 2015년, 고향 땅 밑에 선조들의 흔적이 잠들어 있기를 바라며 고고학자 팀을 고용했습니다. 유럽산 물건을 찾으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그러나 금속 탐지기 탐사 끝에 고고학자들은 유럽산 유물 80점 이상을 발견했으며, 이 성과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Cambridge University Press)가 발행하는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으로 공개되었습니다.
치카소족, 스페인인들이 남긴 물건을 차지하다
발굴 조사 결과, 에르난도 데 소토가 이끄는 부대가 현재의 미시시피 영토 일부를 점유하고 있던 치카소족과 조우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스페인 식민 개척자들은 처음에는 원주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1540년 12월부터 1541년 3월까지 함께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두 집단 간 충돌이 벌어졌고, 스페인 원정대는 일부 소지품을 버린 채 북쪽으로 도주하기에 이릅니다.
연구의 제1저자인 찰스 코브(Charles Cobb)에게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유럽 엘리트나 전략적 교역을 위해서만 쓰이던 희귀하고 값비싼 유럽 물건들이 어느 순간부터 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손에 풍부하게 넘어간 것입니다. 그는 플로리다 박물관과의 인터뷰에서, 치카소족이 유럽인들의 도구와 재료를 접하고 그것에서 영감을 얻는 '수용의 순간'이 뒤따랐다고 설명했습니다.
치카소족은 원래 뼈, 돌, 나무 막대 등을 재료로 도구를 만들어 왔습니다. 금속 유물의 확보는 이러한 전통 도구들을 한층 완성도 높게 다듬는 계기가 되었고, 실제로 고고학자 팀은 전통적인 원주민 도끼를 본떠 만든 철제 복제품을 발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집된 물건 중 일부는 원래 용도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재가공된 것으로 보입니다. 치카소족은 말굽을 칼로 변형시키거나, 구리 조각을 장신구로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치카소족이 절단 도구로 사용한 말굽 조각. 출처: 제프 게이지(Jeff Gage)/플로리다 자연사 박물관
어두운 토대 위에 놓인 문화 전승
논문에서 고고학자들은 16세기 중반 치카소족이 유럽 물건을 재수용한 증거가 어떤 성격의 현상을 반영하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두 사회, 두 문명이 만나는 상황에서 문화 혼합(hybridization)은 자연스러운 사회적 메커니즘입니다. 하지만 식민지 맥락의 특수성은 한 문화가 다른 문화 위에 강요된다는 점에 있으며, 그렇기에 혼합은 종종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찰스 코브의 분석에 따르면, 치카소족은 식민 개척자들의 문화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자신들의 문화와 대화시켰습니다. 16세기 중반 스페인인들은 아직 강력한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원주민들의 공격으로 도주를 강요당했고, 1541년 당시 식민지 제도는 20년 전에 정복된 멕시코 영토에서조차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고고학자들은 스페인인들이 원주민 강제 노동을 구상했음을 보여주는 긴 사슬을 발견했습니다. 치카소족의 공격이 스페인 개척자들이 다음 야영지로 장비를 운반할 200명의 남성을 요구한 직후 일어났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이 섬뜩한 발견은 스페인 정복의 잔혹함을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찰스 코브는 에르난도 데 소토의 원정이 아메리카 대륙에 노예제가 도입된 최초의 에피소드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마지막으로, 100년이 넘는 고립 끝에 18세기 초 유럽인들과의 새로운 접촉은 또 다른 유형의 문화·기술 교류를 낳게 됩니다. 이후 물건들은 치카소족의 일상에 더욱 충실하게 편입되었습니다. 찰스 코브는 "16세기에는 골무 하나가 팔찌로 변신할 수 있었다면, 18세기 말에는 골무는 그저 골무일 뿐이었다"고 요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