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장 상 퓌르 탑(Tour Jean-sans-Peur): 중세 파리가 남긴 마지막 요새, 완벽 방문 가이드

장 상 퓌르 탑(Tour Jean-sans-Peur): 중세 파리가 남긴 마지막 요새, 완벽 방문 가이드파리 중심부의 에티엔 마르셀 거리(Rue Étienne Marcel)에는 오늘날에도 눈길을 끄는 중세 파리의 마지막 유적 가운데 하나인 장 상 퓌르 탑(Tour Jean-sans-Peur)이 우뚝 서 있습니다. 백년전쟁의 격랑 속에서 부르고뉴 공작이 수도 파리에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세운 이 건축물은 중세 역사에 열정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명소입니다. 이 탑은 백년전쟁 당시 부르고뉴파를 이끌었던 부르고뉴 공작 장 상 퓌르(Jean sans Peur, 1371~1419)가 건립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프랑스 왕국과 공작들의 야망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대적 배경부터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1380년 '현자왕'이라 불린 샤를 5세가 서거하자 아들 샤를 6세가 왕위를 계승합니다. 그러나 어린 왕의 통치 초기에는 반란이 끊이지 않았고, 프랑스 내 대귀족 가문들 사이의 경쟁도 날로 심화되었습니다. 섭정직은 앙주 공작 루이 1세에게 맡겨졌지만, 그는 곧 욕심을 드러내 왕태자와 그의 동생인 훗날의 오를레앙 공작 루이의 후견권을 독차지하려 했습니다. 이에 장 드 베리와 당시 부르고뉴 공작 필립 르 아르디(Philippe le Hardi, 대담공)가 분노했고, 결국 앙주 공작은 물러나 지중해의 앙주 영지로 떠나야 했습니다. 그 공백은 사실상 필립 르 아르디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여, 그는 왕의 고문단을 해산하고 자신의 사람들을 앉혔습니다.

샤를 6세는 성년이 되어 친정을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부르고뉴 공작의 세력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세가 된 왕은 삼촌 장 드 베리의 후견에서 벗어나 '마무제(Marmousets)'라 불리던 실력파 참모진을 중심으로 정무를 직접 이끌기로 합니다. 그러나 1392년 샤를 6세가 처음으로 광기의 발작을 일으키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마무제 세력은 축출되었고, 공작들이 다시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장 상 퓌르 탑(Tour Jean-sans-Peur): 중세 파리가 남긴 마지막 요새, 완벽 방문 가이드왕이 정사를 돌보지 못하는 기간 동안 사실상 국정을 주도한 이는 초대 '대담공' 필립이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왕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 루이에 의해 도전받았고, 1404년 부르고뉴 공작이 사망하자 긴장은 한 단계 더 고조되며 왕위를 둘러싼 권력 다툼이 노골화됩니다. 필립 르 아르디의 아들 장 상 퓌르는 오를레앙 공작에게 손해를 입으면서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권력을 계승하려 했습니다. 실제로 부르고뉴 공국의 재정 상황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 상 퓌르는 폭력조차 주저하지 않았고, 마침내 1407년 오를레앙 공작 루이를 암살합니다! 이로써 아르마냐크파와 부르고뉴파 사이의 내전이 시작되었고, 한편으로는 이를 기회 삼아 접근하는 잉글랜드 왕의 위협도 멀지 않았습니다. 장 상 퓌르는 파리에 있는 자신의 저택(Hôtel de Bourgogne)에 거처를 마련하고 수년간 왕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1419년 암살당하고 만데, 1415년 아쟁쿠르 전투 등 잉글랜드의 공세에 시달리던 프랑스는 당시 몰락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장 상 퓌르 탑의 건축

탑이 서 있는 부르고뉴 공작 저택은 원래 성 루이 9세의 조카 로베르가 1270년 인수한 아르투아 가문의 저택이었습니다. 아르투아 가문과 부르고뉴 가문의 혼맥 덕분에 이 저택은 1369년 부르고뉴 가문의 소유가 되었고, 이후 부지가 확장된 데 이어 1409년부터 본격적인 요새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탑은 바로 이 요새화 사업의 핵심 지점으로, 필리프 오귀스트(Philippe Auguste)가 축조한 파리 성곽에 맞닿아 세워진 구조물입니다.

오를레앙 공작 암살에 대한 보복을 두려워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1358년 에티엔 마르셀(Etienne Marcel)의 난에서 보듯 파리 시민들이 언제든 봉기할 수 있다는 전례가 있었기에, 이런 저택의 요새화는 필수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장 상 퓌르는 철저한 경비 아래 이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동시에 점점 쇠약해지는 프랑스 왕권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탑은 그가 탑에서 먼 몽트로(Montereau)에서, 미래의 샤를 7세가 지켜보는 가운데 암살당하는 비극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장 상 퓌르 탑 관람 안내

부르고뉴 공작 저택 가운데 오늘날까지 남은 것은 바로 이 탑 하나뿐입니다. 그럼에도 이곳은 파리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 유적 중 하나로, 백년전쟁과 샤를 6세의 혼란스러운 통치기에 수도 파리에 존재했던 부르고뉴 세력의 웅장한 증표입니다. 따라서 중세 파리를 탐방할 때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로 꼽힙니다.

장 상 퓌르 탑(Tour Jean-sans-Peur): 중세 파리가 남긴 마지막 요새, 완벽 방문 가이드

관람 코스는 단순히 탑의 건축 구조를 넘어,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중세 후기 사람들의 삶, 특히 이런 유형의 저택에서의 생활까지 폭넓게 다룹니다. 웅장한 나선 계단을 따라 올라가며 각 층의 방을 둘러보고, 아이들은 건축가가 서명처럼 남긴 흔적을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계단 꼭대기의 화려한 아치형 천장에는 부르고뉴 공국과 장 상 퓌르 가문의 상징인 참나무, 산사나무, 홉 덩굴 모티프가 새겨져 있어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볼거리입니다.

탑에서는 큰 호평을 받은 '만화 속 중세 시대'(2010년 11월 14일 종료)와 같은 기획 전시도 개최됩니다. 탑뿐 아니라 중세 파리 전체를 아우르는 가이드 투어도 운영되고 있으니 함께 활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세 토목 및 요새 건축의 유일무이하고 온전한 증거'로 평가받는 이곳은 중세 파리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발견해야 할 곳입니다. 근처 루브르 박물관의 붐빔 없이 조용하고 유익한 관람을 원한다면 더없이 좋은 선택입니다.

자세한 관람 정보는 장 상 퓌르 탑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 읽을거리

- R. Rivière, A. Lavoye, 『장 상 퓌르 탑』, 장 상 퓌르 탑 친구 협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