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중세 파리의 역사와 유산: 루테티아에서 기독교 유럽 최대 도시까지

중세 파리의 역사와 유산: 루테티아에서 기독교 유럽 최대 도시까지파리의 기원은 기원전 25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갈리아 부족의 하나인 파리시(Parisii)족이 센 강 한가운데 있는 시테 섬(Île de la Cité)에 정착하며 도시의 뿌리가 마련되었는데, 당시 이곳은 요새화된 도시 '루테티아(Lutetia)'로 불렸습니다. 기원전 52년 로마가 도시를 정복하면서 '키비타스 파리시오룸(Civitas Parisiorum)', 즉 '파리'라는 이름이 붙었고, 6세기 초에는 프랑크 왕국의 수도로 부상합니다. 카페 왕조 시대를 거치며 시테 섬에 요새와 수많은 건물이 들어섰고, 수 세기에 걸친 확장 끝에 파리는 센 강 양안을 모두 품은 중세 기독교 유럽 최대의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왕국의 수도로서의 파리

486년 클로비스 1세가 파리를 점령하면서 도시는 6세기 초 프랑크 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센 강 양안을 따라 새로운 활력을 되찾습니다. 기독교가 번성하면서 파리는 생제르맹로세루아(Saint-Germain-l'Auxerrois)를 비롯한 수도원과 성당이 잇달아 세워지며 강력한 종교적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메로빙거 왕조 말기와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는 왕도의 위상을 잃었고, 샤를마뉴는 엑스라샤펠을 수도로 택했습니다. 9세기에는 바이킹의 침략에 시달렸는데, 특히 885~886년에는 장기간의 포위 공격을 받았습니다. 파리 시민들은 외드 백작과 고즐랭 주교의 지휘 아래 침략자를 성공적으로 격퇴했습니다.

중세 파리의 역사와 유산: 루테티아에서 기독교 유럽 최대 도시까지987년 카페 왕조가 개창되면서 파리는 프랑스 왕국의 수도로서 정치·경제·도시 발전의 모든 면에서 급속한 성장을 이룹니다. 필리프 2세 오귀스트(재위 1180~1223)는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석벽을 쌓고 루브르 요새(1204년)와 네슬 탑으로 방어를 강화했습니다. 거리에는 자갈이 깔렸고, 1183년에는 레알(Les Halles) 시장이 열렸으며, 쁘띠퐁(Petit-Pont)과 퐁오샹쥬(Pont-au-Change) 등의 다리가 시테 섬을 상업 중심지인 우안과 좌안으로 이어주었습니다. 1215년에는 파리대학교가 설립되었고, 1163년 모리스 드 쉴리(Maurice de Sully) 주교가 착공한 노트르담 대성당이 시테 섬에 세워졌으며, 생루이(루이 9세) 시대에는 생트샤펠(1246~1248년)이 건설되고 왕궁이 확장되었습니다. 필리프 4세 '르 벨'(재위 1285~1314)은 파리를 프랑스 왕국의 정치·종교적 중심지로 확고히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중세 파리는 세 개의 구역, 즉 시테 섬, 상업 중심지인 우안, 대학가인 좌안으로 나뉘어 각각 확장되며 그 중요성을 더해갔습니다. 이곳에는 종종 경쟁 관계에 있는 두 개의 권력이 공존했습니다. 샤틀레(Châtelet)에 임명된 왕의 대리인이 군주를 대신해 도시를 통치했고, 시청에 거주하는 상인 대표(상인 시장)는 길드를 총괄했습니다. 1257년에는 생루이의 고해 신부였던 로베르 드 소르본(Robert de Sorbon)이 소르본 대학 설립을 허가받았습니다. 유럽 각국에서 학생들이 몰려들면서 파리대학교는 신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중세 기독교 세계 최고의 지적 중심지 중 하나로 성장했고, 보나벤투라, 토마스 아퀴나스, 장 드 제르송 같은 위대한 학자들이 이곳에서 가르쳤습니다. 인구 약 10만 명에 달한 파리는 13세기 기독교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중세 파리의 흔적

중세 파리를 탐험하려면 가장 웅장한 기념물뿐 아니라 은근히 숨겨진 유산까지 짚고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우선 파리의 심장부인 시테 섬에서 시작해 보겠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160년경 모리스 드 쉴리 주교가 착공해 거의 100년 만에 완성된 작품으로, 관광객이 몰리더라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됩니다. 대성당 앞 광장에서는 중세 거리의 풍경을 상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같은 섬에는 1243년에서 1248년 사이 생루이가 가시관 등 성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세운 생트샤펠이 있습니다. 내부 관리가 아쉬운 점은 있지만 그래도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입니다.

중세 파리의 역사와 유산: 루테티아에서 기독교 유럽 최대 도시까지좌안으로 넘어가면 1246년 시토회 수도사들이 설립한 콜레주 데 베르나르뱅(Collège des Bernardins, 푸아시 거리)과 13세기 전반에 지어진 아름다운 생세베랭(Saint-Séverin) 교회(라틴 지구 중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필리프 2세 오귀스트 시대(1190~1211년)에 쌓인 성벽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클로비스 거리 3번지와 5구 카르디날르무아느 거리 48-50번지에 남아 있습니다. 우안에도 이 성벽의 자취가 남아 있는데, 4구 프랑부르주아 거리 57번지, 생폴 정원(Jardins de Saint-Paul) 일대, 그리고 1구 루브르 거리 11번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습니다. 다행히 근처 에티엔마르셀 거리에는 백년전쟁 한복판이던 15세기 초에 지어진, 보존 상태가 훌륭한 장 무 뻬르 탑(Tour Jean sans Peur)이 서 있습니다.

좌안을 따라 계속 남쪽으로 이동하면 13구 쥘리엔 거리에서 코르들리에(Cordeliers) 수도원의 유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피사 출신의 갈렌(Galen) 사제가 필리프 3세의 지원을 받아 1270년대에 성벽 바깥에 세운 곳인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제 북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 교회 주변의 중세 유적 군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노트르담처럼 11세기부터 13세기 말까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중세 파리의 필수 코스입니다. 동네 분위기도 훌륭하지만 물가가 다소 비싼 편입니다.

중세 파리의 역사와 유산: 루테티아에서 기독교 유럽 최대 도시까지이제 센 강을 건너 우안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성벽 흔적 외에도 루브르 박물관의 중세 유적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유적은 모두 지하에 있지만 박물관이 놀랍도록 잘 정리해 두어, 성벽과 생루이 방의 유적을 직접 둘러볼 수 있습니다. 루브르 방문 시 꼭 들러야 할 곳입니다. 그다음에는 18구 몽세니 거리 2번지로 이동해 12세기에 지어진 아름다운 생피에르 드 몽마르트르(Saint-Pierre-de-Montmartre) 교회를 감상해 볼 차례입니다. 다소 언덕길을 오르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우안의 파리 중심가로 돌아와 3구 생마르탱데샹(Saint-Martin-des-Champs) 수도원 교회 주변의 흥미로운 지역을 둘러보면 좋습니다. 회랑과 인클로저의 탑 등은 모두 13세기에 지어진 것들입니다. 이 정도가 현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주요 기념물들입니다. 중세 파리는 이후 앙시앙 레짐의 파리, 혁명의 파리, 그리고 오스만 남작의 파리에 의해 크게 변모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참고문헌

- 보리스 보브(Boris Bove), 『중세의 파리(Paris au Moyen Âge)』, 벨랭(Belin), 2018.

- 플로리안 뫼니에(Florian Meunier), 『중세 시대의 파리』, 서부 프랑스(Ouest-France), 2014.

- 필립 로렌츠(Philippe Lorentz), 『중세 파리 지도책: 도시 공간, 주거, 사회, 종교, 권력의 장소』

더 읽을거리

- 클뤼니 국립 중세 박물관(Musée national du Moyen Âge de Clu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