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아크로티리의 원숭이 프레스코화: 청동기 시대 미노스인들이 남아시아까지 항해했을까?

에게해 산토리니 섬의 유명 유적지 아크로티리 벽을 장식하는 원숭이들은 전통적으로 이집트나 근동 지역 출신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원숭이들의 기원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먼 곳일 수 있습니다.

아크로티리의 원숭이 프레스코화: 청동기 시대 미노스인들이 남아시아까지 항해했을까?

고대 테라 섬(현 산토리니) 아크로티리 유적에서 발견된 회색랑구르 원숭이 벽화.

미노스 문명의 벽화에 담긴 원숭이

"오디세우스처럼 멋진 항해를 한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노래한 16세기 시인 조아생 뒤 벨레의 시구처럼, 고대 그리스 세계의 항해사들은 실로 험난한 장거리 항해를 감행했습니다. 그런데 에게해 산토리니 섬(고대 테라)의 벽화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중해 일부 민족의 원정은 학계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되고 더 멀리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벽화에는 청회색빛 원숭이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청동기 시대(기원전 약 2700~1200년)에 산토리니, 크레타 등 에게해 전역에서 번성했던 미노스 문명의 화가들이 무려 남아시아까지 도달했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해당 프레스코는 아크로티리 유적 한 건물의 벽을 장식하고 있으며, 기원전 1600년경 대규모 화산 폭발로 소멸한 이 문명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크로티리의 원숭이 프레스코화: 청동기 시대 미노스인들이 남아시아까지 항해했을까?

청동기 시대 아크로티리 유적의 벽화, 산토리니. © Leemage / AFP

인더스 계곡

그동안 벽화 속 원숭이들은 개코원숭이, 혹은 이집트 출신으로 알려진 바버리마카크(Macaca sylvanus, '마고'라고도 불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미국 필라델피아)와 런던 동물학회(영국) 연구진이 정밀하게 재검토한 결과, 'S'자 형태의 긴 꼬리로 쉽게 식별되는 또 다른 종, 즉 네팔과 인도에 주로 서식하는 회색랑구르(Semnopithecus)임이 밝혀졌습니다.

아크로티리의 원숭이 프레스코화: 청동기 시대 미노스인들이 남아시아까지 항해했을까?

남인도에서 촬영된 회색랑구르. © Patrice Correa / Biosphoto / AFP

영장류학자, 분류 삽화가, 미술사 고고학자로 구성된 이 연구팀은 학술지 Primates에 게재한 논문에서 "이 원숭이 묘사의 새로운 잠재적 기원지를 확인했다. 바로 인더스 계곡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인더스 계곡 역시 청동기 시대에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곳입니다.

먼 문명을 잇던 청동기 시대의 교류망

그렇다면 미노스인이나 크레타인이 직접 저 먼 지역까지 항해했던 걸까요? 아니면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연구진은 이렇게 추측합니다. "에게해 세계와 인더스는 메소포타미아를 경유해 연결되어 있었을 수 있으며, 당시 이 지역 통치자들이 즐겨 두었던 왕실 사육장으로 랑구르가 수입되었을 수 있다. 크레타 출신 여행자들이 그곳에서 랑구르를 목격했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아크로티리의 원숭이 프레스코화는 겉보기에 전혀 닿지 않아 보이는 문명들 사이에서도 청동기 시대에 활발한 교류가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