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틀랜드 군도의 작은 섬 무사(Mousa)에 우뚝 선 브로크(Broch)는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선사시대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힙니다.
스코틀랜드 전역에 남아 있는 500여 개의 브로크 가운데 가장 높은 이 탑은 1980년대에 이루어진 복원 작업 덕분에 오늘날에도 직접 방문할 수 있습니다.
브로크란 무엇일까요? 브로크는 스코틀랜드 철기시대(기원전 300년~서기 500년)에 모르타르 없이 마른 돌만으로 쌓아 올린, 절두원추형 이중 벽 구조의 탑입니다. 유럽의 선사시대는 통상 로마 정복으로 끝난 것으로 여겨지지만, 스코틀랜드와 같은 외딴 지역에서는 그 이후로도 수 세기 동안 이러한 건축 전통이 이어졌습니다.

무사 브로크는 기원전 100년경(스코틀랜드 공식 유산 웹사이트에서는 기원전 300년으로 기록)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무사 섬 서해안의 작은 곶 위에 세워졌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러한 외딴 위치야말로 건물이 훼손 없이 잘 보존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설명합니다.
모든 브로크 중에서 키가 가장 큰 무사 브로크는 높이 13m에 달하는 반면, 직경과 내부 공간은 스코틀랜드의 브로크 중 가장 작은 편입니다. 역사가들은 그 용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방어 시설이었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높은 곳에 개구부가 전혀 없어 방어 목적에는 적합하지 않았다는 반론도 제기됩니다.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바닥에 난 작은 문뿐이며, 안으로 들어가면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이어집니다. 바닥에서 화덕과 물탱크의 흔적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원래는 2층을 나무 바닥으로 마감해 주거 공간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무사 브로크는 바이킹의 침입도 목격했습니다. 어느 시점에는 원래 거주자보다 키가 큰 노르웨이인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오래된 상인방을 제거해 문의 높이가 두 배로 늘어나기도 했는데, 이는 반영구적인 거주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현대 복원 과정에서 입구는 원래 높이로 되돌려졌습니다.
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또 다른 특징은 1층 벽 사이에 마련된 세 개의 구획입니다. 이 구획은 지면에서 0.5m 위의 상인방 구멍을 통해 출입할 수 있으며, 상인방 위에는 빛과 공기가 실내로 들어오는 별도의 구멍이 있습니다. 내부 벽면에는 여러 개의 선반이 설치되어 있어 물품 보관용으로 쓰였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 공간들의 정확한 용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사실은 이 브로크가 수 세기에 걸쳐 끊임없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며, 두 편의 바이킹 사가에 등장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첫 번째는 13세기 초에 쓰인 『에길 스칼라그림손 사가(Egil Skallagrímsson's saga)』로, 아이슬란드로 항해하던 중 난파한 노르웨이 귀족이 이곳을 피난처로 삼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1200년경에 쓰인 『오크니인의 사가(Orkneyinga saga)』로, 1153년 오크니 백작 하랄드 매다드슨(Harald Maddadsson)이 탑 안에 갇혀 있던 납치된 어머니를 구출하기 위해 브로크를 공격하고 포위한 사건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고대 건축물에 대한 근대적 관심은 중세 역사주의가 유행하기 시작한 1774년, 골동품 수집가 조지 로우(George Low)가 그린 그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후 수많은 지식인과 작가들이 무사 브로크를 찾았으며, 월터 스콧(Walter Scott)은 1814년 이 요새를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픽트족 요새"라고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최초의 수리와 복원 작업은 1861년에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내부에서 풍부한 동물 뼈, 도자기 파편, 그리고 전나무로 조각된 길이 거의 1m에 달하는 노르웨이 배까지 발견되었습니다. 이 유물 대부분은 현재 에든버러의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981년에는 노엘 포주트(Noel Fojut)가 『무사는 브로크인가?』라는 제목의 논쟁적인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무사 브로크가 다른 브로크들과 비교해 지니는 예외적인 특징들을 근거로, 이 건축물을 해당 유형에 귀속시키는 기존 분류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