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역사 전문 출판사 데스페르타 페로 에디시오네스(Desperta Ferro Ediciones)는 오랜 독자들에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무대를 열어주고자 했습니다. 훌륭한 독자 속에는 잠재적인 작가가 숨어 있다는 확신 아래, 출판사는 역사 마이크로 에세이 콘테스트를 통해 누구든 필력을 시험해 볼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과연 펜을 들어볼 용기가 있으신가요?
대회 개요: 짧지만 깊이 있는 역사 에세이
이 콘테스트의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자유로운 역사 주제로 스페인어 1,200~1,500단어 분량(참고문헌 및 인용 제외)의 에세이를 집필하는 것입니다. 분량이 조금 넘더라도 엄격하게 배제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작은 발견'처럼 하나의 특정 주제에 몰입할 수 있는 소박한 글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주제에는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았습니다. 일본사 애호가라면 헤이안 시대에 대한 지식으로 심사위원을 놀라게 해도 좋고, 관심사가 러시아 혁명이나 19세기 미국 독립에 있다면 주저 없이 원고를 보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역사 마이크로 에세이에는 다양한 상품이 준비되어 있었으며, 접수 마감일은 2월 28일이었습니다.
상품과 심사 기준
출판사 특유의 역사적·학술적 엄밀함을 바탕으로 모든 원고를 평가한 뒤, 프리미엄 구독권을 받을 우승자 1명을 선정했습니다. 프리미엄 구독권은 1년간 데스페르타 페로의 4개 잡지와 특집 호를 모두 받아볼 수 있는 혜택입니다. 여기에 더해 본인이 선택한 잡지를 무료 구독할 수 있는 최종 후보 3명도 선발했습니다. 충분한 수준에 도달한 에세이는 출판사 홈페이지 블로그에 게재되어 널리 알림으로써, 참가자가 작가로서 빛나는 면모를 세상에 보여줄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중에서 유망한 역사학자가 배출되지 않겠습니까?
제1회 데스페르타 페로 역사 마이크로 에세이 대회 결과
기다림이 길었지만, 드디어 제1회 역사 마이크로 에세이 대회의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결정까지 시간이 다소 걸린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참여 열기가 모든 예상을 뛰어넘어, 130편이 넘는 에세이를 하나하나 검토하고 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래에서 우승 에세이(프리미엄 구독권 수상)와 최종 후보 3편(우승자 선택에 따라 잡지 하나를 무료 구독할 기회)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 저희 블로그에서 이 4편의 글을 감상하실 수 있으며, 앞으로 몇 주에 걸쳐 대회에 접수된 더 많은 원고를 순차적으로 게재할 예정입니다. 좋은 글이 너무 많아 심사 결정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우승자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그리고 모든 참가자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합니다!
우승작
왕립 백신 자선 원정과 「팔에서 팔로」의 희생
글: 에스페란사 몰레로 실베로(Esperanza Molero Silvero)

1803년, 스페인 라코루냐 항을 떠난 코르벳함에는 발미스(Balmis) 의사와 살바니(Salvany) 의사, 그리고 22명의 어린이가 동승하고 있었습니다. 목적지는 해외 식민지였습니다. 이들의 임무는 천연두 백신을 아메리카의 스페인 왕령 영토에 전파하여 인구를 예방 접종하고,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온 전염병을 막으며, 나아가 왕실 금고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문 읽기]
최종 후보작
펠리페 4세 군대의 실력주의와 능력주의 — 알론소 데 메르카도 이 비야코르타의 사례
글: 이반 무뇨스 무뇨스(Iván Muñoz Muñoz)

공적, 자질, 경험. 16세기 중반부터 왕실이 군대에 도입하고자 노력한 진급 제도의 근간은 바로 이 세 가지였습니다.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장교의 자격이 높을수록 그가 지휘하는 부대의 작전 능력 또한 향상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문 읽기]
19세기 서양과의 충돌, 대조되는 사례 — 중국과 일본
글: 제라르 피에라(Gérard Pierra)

18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군사적·경제적·정치적 강국이었던 중국과 일본. 한 세기 반 뒤인 19세기 말, 중국이 아시아의 주도권을 내주고 가난하고 정치적으로 무력하며 사회적 혼란에 빠진 나라로 추락할 것이라고 상상한 이는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독재적이고 봉건적이며 쇄국주의적인 도쿠가와 막부 치하의 일본이 불과 150년 만에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국가로 탈바꿈하며 군사적 야망을 드러낼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수세기간 소극적인 접촉만 유지해 온 유럽 열강의 집단 등장은 이미 심각한 내부 문제에 시달리던 양국 정부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전문 읽기]
오하이오 — 지도 위에서 벌어진 전쟁의 마지막 전투
글: 다리오 비코(Darío Vico)

1970년 5월 4일 월요일,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마지막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군사적 실패를 넘어 사회적 대실패가 구체화된 장소는 머나먼 아시아의 정글이 아니라 오하이오주 켄트 주립대학교 캠퍼스였습니다. 미군이 수행한 다른 많은 작전과 달리, 이것은 영웅적인 행보가 아니었습니다. 며칠간 이어진 소요 진압을 위해 투입된 100여 명의 주 방위군 병사들은 반전 시위로 번진 캠퍼스에서 언덕 위로 후퇴한 채 시위대에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일부는 M1 반자동 소총을 들었고, 어떤 이들은 돌멩이와 구호 플래카드를 들었으며, 대다수는 책과 파일만을 쥐고 있었습니다. [전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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