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철기 시대에도 모든 켈트 방패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기원전 4세기경으로 추정되는 나무껍질로 만든 켈트 방패가 영국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이런 형태의 방패가 처음 발견된 사례로, 고고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철기 시대에도 모든 켈트 방패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영국 레스터에서 출토된 켈트 방패의 잔존 부분. 기원전 395~255년경으로 추정됩니다.

물속에서 2300년을 견딘 놀라운 방패

영국 레스터 대학 고고학 서비스(ULAS) 연구팀은 2015년 잉글랜드 남부 에버즈 메도우스(Everards Meadows) 유적지, 소어 강(River Soar) 인근의 물에 잠긴 지층에서 기원전 395~2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무기 파편을 발굴했습니다. 약 2300년 세월을 습윤한 땅속에서 보낸 이 방패는 놀랍게도 나무껍질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유럽에서는 이런 사례가 한 번도 보고된 적 없는 ‘첫 번째’ 발견입니다.

그렇다면 이 방패는 왜 그곳에 묻혀 있었던 걸까요? 의식에 바쳐진 공물이었을까요? 아니면 표면에 남은 창과 검의 흔적으로 미루어 볼 때, 반복되는 전투 충격을 견디기에는 너무 연약해서 주인이 버리고 간 것일까요?

4년간의 실험 고고학

연구팀은 마트 비미시(Matt Beamish)의 지도 아래 4년에 걸쳐 이 방패를 재현하는 실험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성분 분석 결과, 방패는 오리나무·버드나무·사시나무·개암나무 껍질을 정교하게 조합해 만들어졌으며, 사과나무·피나무·사시나무·오리나무의 섬유질 목재 띠로 보강된 매우 복잡한 구조임이 밝혀졌습니다. 여기에 조립체가 찢어지거나 흩어지지 않도록 가죽을 여러 겹 덧씌웠을 가능성이 높으며, 바깥면은 체커보드(격자 무늬)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철기 시대에도 모든 켈트 방패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2015년 발견 당시 방패의 모습. ©ULAS

켈트 전사들은 금속 방패만 쓰지 않았다

이번 실험 연구를 통해 나무껍질 방패는 단단한 통나무나 금속 방패에 비해 내구성은 크게 떨어지지만, 무게가 훨씬 가벼워 사용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켈트 전사들이 커다란 청동판으로 만든 금속 방패만을 사용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대표적인 금속 방패인 ‘배터시 방패(Battersea Shield)’는 기원전 1세기 작품으로, 19세기에 발견되어 현재 런던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철기 시대에도 모든 켈트 방패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대형 청동판으로 제작된 배터시 켈트 방패(기원전 1세기). 19세기 발견. ©British Museum

전문가들은 어떻게 보는가

파리 소르본 대학교 안드레 샤스텔 연구센터(CNRS UMR 8150)에서 켈트 세계의 미술과 고고학을 연구하는 나탈리 지누(Nathalie Ginoux) 박사는 “흔한 통념과 달리 많은 켈트 방패는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설명합니다. 그녀에 따르면 아일랜드 팁퍼러리 근처 클로누라(Clonoura, 타격 흔적이 남아 있는 방패가 출토됨), 스위스 라텐(La Tène), 덴마크 요르츠스프링(Hjortspring)에서도 나무 방패가 발견되었습니다. 심지어 이집트 카이로 인근에서도 나무 방패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기원전 3세기경 켈트 용병들이 소아시아 등지에서 얼마나 활발하게 활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역사 기록을 확증하는 유일한 표본

그럼에도 영국 연구진이 발굴한 이 표본은 독보적입니다. 지누 박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나무껍질로 만들어진 유일한 방패다. 고대 문헌의 기록을 실물로 확증해 주는 셈이다”라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기』(Commentarii de Bello Gallico) 2권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 그들은 한편으로는 미리 숨겨두었던 무기를 사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급히 나무껍질이나 버드나무 가지를 엮어 만들고 가죽을 씌운 방패를 들고, 밤의 세 번째 경야(更夜)에 우리 진영으로 올라가기 가장 쉬운 쪽에서 갑작스럽고 대규모로 돌출했다.”

또한 기원전 217년 6월 21일,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플라미니우스 집정관의 로마군과 한니발 바르카(켈트 부대를 포함)의 카르타고군이 격돌한 트라시메노 호 전투에서도 버드나무를 엮어 만든 방패가 언급됩니다. 레스터 나무껍질 방패는 조만간 대영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 라텐 문화(La Tène Culture) 또는 제2차 철기 시대는 기원전 450년경부터 25년경까지 유럽에서 전개된 고고학 문화로, 켈트 문화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할슈타트 문화(기원전 1300~400년)를 계승했습니다.

켈트 용병

고대 저자들이 ‘켈트족’, ‘갈라티아인’, ‘골인’이라 불렀던 이들의 용병 활동은 매우 큰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20여 명의 고대 저자가 남긴 기록에서 150건이 넘는 켈트 용병 또는 보조병 관련 언급이 확인되며, 그리스·라틴 문헌 속 등장 시기는 기원전 480년 시칠리아 히메라 전투부터 서기 1세기 말까지 이어집니다.

CNRS 연구책임자 뤼크 바레(Luc Baray)는 이 현상을 전문으로 다룬 저서를 통해 “이 현상의 절정은 기원전 3세기다. 이 시기에 켈트족은 서부 지중해 전선의 제1·2차 포에니 전쟁이나 소아시아의 에피고노이 전쟁 등에서 외국 군대의 일원으로 가장 자주 참전했다”고 설명합니다. 고대 전 시대를 통틀어 켈트 용병의 활약은 이탈리아, 그리스, 소아시아, 트라키아는 물론 바빌로니아, 시칠리아, 북아프리카, 이집트까지 기록으로 전해집니다.

더 읽기: 뤼크 바레, 『켈트족, 갈라티아인, 골인: 고대의 용병들』(Celts, Galatians and Gauls, mercenaries of Antiquity), 피카르 출판사(Picard),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