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전설과 역사가 공존하는 기적의 올리브나무, 라 사그라의 신비

고대부터 동부 안달루시아의 불분명한 어느 장소에, 단 하루 만에 열매를 맺는 올리브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그 기름은 강력하고 거의 기적에 가까운 치유 효능을 지녔다고 전해진다. 수확일이 되면 순례자들이 몰려들어 열매를 따 갔으며, 이 나무는 한 기독교 성인의 무덤 곁, 샘 옆에 심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11세기 이슬람 연대기에서도 이 나무의 존재가 증언되지만, 정확한 위치는 명시되지 않았다. 무려 8세기 동안 그 심긴 장소를 둘러싼 추측이 난무했고, 심지어 바티칸에서는 나무 아래 묻힌 성인의 유해를 가져갔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문헌상으로 확실하게 고증된 유일한 장소는, 우에스카르(Huéscar)와 라 푸에블라 데 돈 파드리케(La Puebla de Don Fadrique) 사이, 라 사그라(La Sagra) 산기슭이다.

역사적 배경: 히스파니아 기독교의 여명과 사도적 인물들

서기 1세기, 히스파니아에 기독교가 막 싹트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도적 인물들(Apostolic Men)—세실리오, 에우프라시오, 테시폰테, 인달레시오, 엑실리오, 세군도, 토르쿠아토—이 사도 바울의 파견을 받아 베티카(Baetica) 지방에 복음을 전파하고자 카르타헤나에 상륙했다. 그들은 내륙 그라나다 고원을 향해 나아갔고, 아키(Acci, 현 과딕스)라는 도시를 거점으로 삼아 베티카 전역으로 흩어졌다.

이 땅에서는 우상이 숭배되고 있었다. 도시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행을 쉬게 하던 중, 동행 몇몇이 음식을 사러 갔다가 유피테르, 메르쿠리우스, 유노의 축제를 벌이던 군중과 마주쳤다. 이들은 사도 일행을 적대적으로 맞이하며 쫓았고, 도망치는 과정에서 다리가 무너져 추격하던 군중이 강물에 휩쓸리는 기적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이 놀라운 징조 앞에서 사람들은 사도들을 극진히 맞이했고, 귀족 여인 루파리아(Luparía)가 그들을 자기 집으로 맞아들였다. 그녀는 바실리카와 세례당을 지어 기독교 예배처로 삼고 세례를 받았으며, 생을 마친 뒤 천상의 고향으로 갔다. 이들 중 한 명의 거룩한 무덤 앞에서, 복된 고백자들의 전구를 통해 기적이 행해졌다.

하루 만에 열매를 맺는 올리브나무의 전설

해마다 5월 1일, 무덤이 있던 교회 앞에서 한 그루의 올리브나무가 심어졌는데, 전날 저녁부터 꽃이 피어 24시간 만에 열매 가득한 나무가 되었다. 이튿날 온 마을 사람들이 올리브를 따서 질병의 치료약으로 소중히 간직했다.

이 전설은 이미 7세기에 문헌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아랍 침입 이후 스페인 북부로 이주한 한 베티카 출신 모사라비(Mozarabic)가 기록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올리브나무 기적에 대한 기록은 압돈 순교록(Abdon Martyrology)(859년)에서 처음 등장한다. 여기서는 사도적 인물들을 언급하며 올리브나무가 산 토르쿠아토(San Torcuato)의 무덤 옆에 있었다고 적고 있다. 반면 체라텐세 순교록(Martyrology Cerratense)에서는 사도적 인물들이 교회 앞에 올리브나무를 심었다고만 할 뿐, 어느 교회인지는 특정하지 않는다. 모든 모사라비 전례력은 사도적 인물들의 축일을 5월 1일로 두고 있어, 당시 안달루시아에 아직 수도승들이 있는 수도원과 기독교 공동체가 활발히 활동하며 순교자의 무덤을 공경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사실은 레온 왕 오르도뇨 2세(Ordoño II, 재위 914~924)가 917~918년경 그 유해를 되찾으려 했을 정도로 중요한 성지였음을 입증한다.

이슬람 문헌 속의 기적 올리브나무

아랍 침입 이후에도 이 전설은 신비의 땅을 찾아다니는 여행가·지리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슬람 시대 문헌자료가 풍부하게 남아 있는데, 알안달루스(이베리아 이슬람 왕조)에는 단 두 그루의 기적 올리브나무가 있었는데, 나머지 한 그루는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다고 한다.

11~12세기 사람들에게 이는 진정한 기적이었다. 그래서 이곳은 인간의 고난을 기적으로 해결하려는 순례자들의 중요한 성지가 되었다. 그들은 기적의 올리브 열매가, 로마 시대 혹은 칼리파 박해 시대의 선한 은수자, 즉 순교자가 나무 아래 묻혔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무도 정확한 위치를 글로 남기지 않았다.

알우드리(Al-Udri)의 증언 (1003~1085)

알메리아 출신 지리학자 알우드리는 투드미르 코라(무르시아 왕국) 관할 지역을 묘사한 저서에서, 로르카(Lorca) 영지 내 산악 지대에 있는 한 모사라비 교회 옆에 기적의 올리브나무가 있으며, 그 근처에 미라바이트(Mirabayt)라는 성이 있다고 기록했다. 11세기 당시 라 사그라-산티아고 데 라 에스파다 산악 지대가 로르카 관할이었음을 보여주며, 미라바이트 성은 오늘날의 미라베테스(Mirabetes) 성으로 확인된다.

무함마드 이븐 아비 바크르 알주흐리(Mohammed Ibn Abi Bakr al-Zuhri)의 목격담 (1130~1150년경)

그라나다 출신 지리학자 알주흐리는 직접 순례 현장을 목격했다고 1인칭으로 기록했다. 그는 올리브나무 주변에 군중이 모여 열매가 익기를 기다렸으며, 다 익기도 전에 열매를 따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전한다.

히미야리(Himyari)의 추가 기록

이후 히미야리는 같은 전설을 전하면서, 수도원이 보관하던 순교자 유해에 대한 정보를 더했다. 이브라힘 이븐 야흐야 알투르투시(Ibrahim ben Yahyá al-Turtusi)는 로마(기독교) 왕, 즉 교황 요한 12세(Pope John XII)가 305년(히즈라력/서력 917~918년)에 이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기록했다.

기독교 측 문헌과 교황청의 관심

10세기, 토르토사(Tortosa) 출신 유대인 상인 이브라힘 이븐 야쿠브(Ibrāhīm ibn Yaʿqūb, 아브라함 벤 야코프)는 이슬람과 기독교 영토를 오가며 무역을 했다. 960년경 신성로마제국에 이르러 칼리프 압데라만 3세의 명으로 오토 대제의 궁정에 대사로 파견되었다. 그는 그라나다 주교 레세문도(Recemundo de Ilíberis, 아랍명 라비 이븐 지아드 알우스쿠프 알쿠르투비)와 동행했는데, 그는 유명한 모사라비 전례력(Mozarabic Calendar)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상인이나 주교 중 누군가를 통해, 성인의 시신 위에 심긴 올리브가 기적을 행한다는 소식이 교황 요한 12세의 귀에 들어갔다. 961년 메디나 아사하라로 파견된 교황청 사절단 기록이 남아 있으나, 당시 이미 압데라만 3세는 서거한 뒤였다. 그들이 찾던 성인은 다름 아닌 산 토르쿠아토였고, 연대기가 가리키는 장소는 바자(Baza) 인근이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777년 산 토르쿠아토의 유해는 발굴되어 산타 콤바(Santa Comba, 오렌세)로, 이후 셀라노바(Celanova)로 옮겨져 대부분이 그곳에 안치되어 있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전통과의 연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자료들은 훗날 칼릭스투스 코덱스(Codex Calixtinus)에서 야고보 성자(Santiago el Mayor)의 주역을 부각시키기 위해 변형·보완되어 활용되었으며, 사도적 인물들의 생애와 업적이 수집된 것도 근본적으로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라 사그라: 문헌으로 확인된 유일한 장소

이 올리브나무의 존재는 16세기 초반 문서로 온전히 확인된다. 기적을 행했는지는 개인의 신앙 영역이지만, 1515년 8월 11일자 우에스카르 역사문서보관소 기록에 따르면, 시장 곤살로 데 페날로사(Gonzalo de Peñalosa)가 이웃 마르틴 갈란(Martín Galán)에게 성스러운 올리브나무에 순례 온 신도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체포·투옥할 권한을 부여했다. 4세기 전 아랍 지리학자들이 묘사한 소란과 흡사한 광경이 16세기에도 재현되었음을 보여준다.

올리브나무는 아라곤 지역에서 모셔온 알로디아(Alodía)와 누닐론(Nunilón) 성녀를 공경하기 위해 지어진 에르미타(작은 성당) 옆에 서 있으며, 아랍 문헌이 언급한 미라베테 성(Mirabete Castle) 기슭, 라 사그라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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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ONTENLA BALLESTA, S.: "Myths in Andalusian Lorca", Alberca, 6, Lorca, 2008, pp. 107-111.

본 글은 제2회 데스페르타 페로(Desperta Ferro) 역사 마이크로에세이·마이크로스토리 공모전 마이크로에세이 부문 출품작입니다. 글의 자료 수집, 진실성, 독창성은 전적으로 저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