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신비의 인더스 문자 해독: 4천 년 미스터리에 맞선 학제 간 도전

고대 기록을 해독하는 일은 역사학자와 문화연구자들의 오랜 목표였습니다. 고대 문헌을 읽을 수 있게 되면 당대의 종교, 관습, 역사, 일상생활에 대한 정보를 훨씬 풍부하고 정확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고대 문자가 순조롭게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샹폴리옹(Jean-François Champollion)이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결정적 단서가 된 로제타 스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런 '비교 대상'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노아 선형문자 A, 에트루리아 문자, 이스터섬의 롱고롱고처럼 전부 혹은 일부가 지금도 미궁 속에 남아 있는 문자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완강하게 비밀을 지키는 문자가 바로 인더스 문명에서 사용된 인더스 문자(하라파 문자)입니다.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3300년경부터 기원전 1300년경, 즉 청동기 시대와 맞물려 번영했습니다.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북서부에 걸친 인더스 강 유역의 광대한 지역이 무대였습니다. 총 1,000여 개의 정착지로 구성되었으며, 그중 규모가 큰 마을이 100여 개, 주요 도시만 5개에 달했는데, 가장 잘 알려진 두 도시가 바로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입니다.

신비의 인더스 문자 해독: 4천 년 미스터리에 맞선 학제 간 도전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나일강이 이집트 문명을 키웠듯이, 인더스 문명 역시 강의 순환 주기에 기반한 농경 체계 위에 세워진 당대 최대 규모의 문화권이었습니다. 수준 또한 상당히 앞서 있었습니다. 계획적으로 설계된 도시, 정교한 배수 시설, 화장실을 갖춘 주택, 뛰어난 금세공 기술 등이 그 증거이며, 일부 학자들은 이 문명을 힌두교의 기원으로 보기도 합니다.

특이하게도 이 문명에서는 전쟁이나 군대의 존재를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원인인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기원전 1900년경부터 인더스 문명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그 방식도 이유도 밝혀지지 않은 채 결국 사라졌습니다. 이후 약 4천 년간 망각 속에 잠겨 있다가, 1920년에야 영국과 인도의 고고학자들이 유적을 발견하며 발굴이 시작되었습니다.

발굴된 유물 중에는 인장용 돌, 테라코타 명판, 기묘한 무늬가 새겨진 금속 물체들도 있었고, 그 안에 새겨진 문자의 해석은 곧 연구자들의 집착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글자는 인간과 동물을 본뜬 그림문자 기호로 이루어져 있었고, 특히 낯선 '유니콘' 형상이 반복적으로 등장해 호기심을 자아냈습니다. 그러나 언어학자들의 여러 차례 도전에도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브라흐미 문자(1837년), 설형문자(19세기 후반), 선형문자 B(1950년대), 마야 문자(20세기 후반) 등 다른 고대 문자들이 차례로 해독되어 가는 동안에도 말입니다.

신비의 인더스 문자 해독: 4천 년 미스터리에 맞선 학제 간 도전

이집트 상형문자, 드라비다어족, 수메르 상형문자와의 비교에 기반한 번역 시도들은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고, 북인도 언어의 조상인 산스크리트어와 연결하려는 접근 역시 인도 민족주의적 시각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결정적인 장애물은 '비교 대상의 부재'입니다. 로제타 스톤, 혹은 유카텍 마야 문자 해독의 열쇠가 된 스페인어 기록과 같은 참조점이 없으니, 이 문명 통치자들의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고고학자, 언어학자, 컴퓨터 기술 전문가들이 힘을 합치는 학제 간 접근이 주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인도학자 아스코 파르폴라(Asko Parpola), 고고학자 시카리푸라 라간타 라오(Shikaripura Ranganatha Rao) 등의 연구 덕분에 인더스 문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였다는 사실과, 단어와 개념을 로고그램으로 표현하면서 음절 기호를 일부 병용하는 로고음절 문자(logosyllabic)라는 점 — 수메르 설형문자나 마야 상형문자와 유사한 방식 — 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기저 언어는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원시 드라비다어(proto-Dravidian)일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각 문장이 겨우 5~26자에 불과할 만큼 남아 있는 텍스트가 짧다는 점 때문에, 이 기호들이 실제 음성 언어를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설형문자 초기 단계처럼 물품 수량과 담당 관리의 이름만 적은 행정 기록에 그친 것인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기호의 배열 패턴으로 볼 때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반면 2004년 하버드 대학교 팀(역사학자 스티브 파머, 계산언어학자 리처드 스프로트, 산스크리트학자 마이클 비첼)이 '인더스 기호는 문자 체계가 아니다'라는 파격적인 이론을 내놓으면서 이 논쟁은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학제 간 협력의 결실은 컴퓨터 기술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미국 워싱턴 대학교(시애틀)의 라제시 라오(Rajesh Rao) 교수 팀이 대표적입니다. 이 팀은 인더스 문자와 수메르 설형문자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을 재확인했는데, 진짜 참신한 부분은 분석 방법입니다. 프로그래밍 언어부터 DNA 염기 서열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순차 시스템의 조합을 컴퓨터로 분석해, 인더스 기호열 역시 언어적 특징을 지닌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희망적인 사실 하나. 이 거대한 문명은 지금까지 겨우 10% 정도만 발굴되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더 많은 텍스트가 세상에 나올 가능성이 충분하며, 그중 어떤 조각 하나가 인더스 문자의 '로제타 스톤'이 될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