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몽골 통치자들은 자신의 최후의 안식처를 철저히 감추었고, 그 결과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을 오늘날까지 매료시키는 거대한 미스터리를 후세에 남겼습니다.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징기스칸일 것입니다. 연구자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여러 차례의 유력한 단서(물론 중국 영토 내에서의 발견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최첨단 기술의 동원에도 불구하고 징기스칸의 마지막 안식처는 지금까지도 철저히 비밀에 싸여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위성까지 동원한 마지막 탐색 시도가 이루어졌으나 결실은 없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징기스칸의 경우 무덤의 위치를 짐작하게 할 기록 자료는커녕 전설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다른 통치자들의 경우에는 관련 기록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마찬가지였는데, 이는 아마도 학계의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훌라구 칸(Hulagu Khan)과 그의 아들 아바카 칸(Abaqa Khan)의 무덤에서 바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료에 따르면 두 칸은 각각 1265년과 1282년, 이란 북서부 우르미아 호수(Lake Urmia)에 떠 있는 카부디 섬(옛 이름 샤히 섬)의 높이 약 300m 절벽 위 요새, 혹은 암석을 깎아 만든 공간에 안장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 이란 북서부 아제르바이잔 지방에 위치한 이 호수는 최대 확장기(면적 5,200㎢, 길이 140km, 폭 55km)에는 중동 최대의 염호였으며,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호수에는 한때 102개의 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을 공급하는 강에 댐이 건설되고 주변에서 우물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호수 면적이 옛 규모의 10% 수준으로 급감하였고, 섬 대부분은 더 이상 섬이 아닌 육지로 변했습니다.

이란 정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유네스코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호수는 최근에야 겨우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102개 섬 가운데 두 번째로 큰 섬이 바로 카부디 섬입니다. 현재는 호수의 건조화로 육지와 연결되어 사실상 반도가 되었으며, 사람이 거주하는 유일한 섬이기도 합니다. 섬의 북쪽, 동쪽, 남쪽 해안에는 네 개의 마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전통과 문헌 기록에 따르면, 바로 이곳이 훌라구 칸과 그의 아들 아바카 칸의 매장지입니다. 훌라구는 징기스칸의 손자 중 한 명으로, 1259년 독립 왕국인 페르시아 일칸국(Ilkhanate)의 초대 칸이 되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지녔던 그는 바그다드를 멸망시켰고, 십자군 원정에도 가담했습니다.

훌라구가 세상을 떠날 때, 그는 막대한 보물과 함께 묻혔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장례식은 일칸국 역사상 유일하게 인신공양이 바쳐진 장례식이었는데, 그의 첩들마저 산 채로 곁에 함께 묻혔다고 합니다.
한편 마가(Maragha) 인근 마을에는 여러 기념탑이 서 있는데, 훌라구는 이곳에 천문대를 설립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행성 운동 이론 사이의 모순을 해결한 유명한 천문학자 나시르 알딘 알투시(Nasir al-Din al-Tusi)가 바로 이 천문대에서 활동했습니다. 이 탑들이 훌라구의 장례와 관련이 있음을 입증할 증거는 없지만, 고대부터 훌라구의 가족—특히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과 깊이 연관되어 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카부디 섬에서 두 칸의 무덤을 찾기 위한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1939년이었습니다. 저명한 여행 작가 콜린 터브론(Colin Thubron)은 저서 『실크로드의 그림자(Shadow of the Silk Road)』에서 당시 조사를 언급하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담당 고고학자가 섬 서해안 근처 거의 접근이 불가능한 산속에서 암석을 깎아 만든 일련의 저수조와 방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는 그곳을 탐사하러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로저 모어 니스벳(Roger More Nisbett)은 페르시아 샤 정권이 무너지고 호메이니가 집권하기 직전, 서구인에게 국문이 닫히기 바로 전에 이 지역을 탐험했습니다. 그는 암석을 깎아 만든 저수조와 방을 직접 발견했지만, 안타깝게도 본격적인 발굴을 수행할 장비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도자기 파편을 수집해 테헤란 국립박물관으로 가져갔고, 박물관은 해당 파편이 실제로 몽골산 도자기임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 역시 급변하는 정치 상황 때문에 현장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그 이후로 이 지역을 재조사하기 위해 찾아온 고고학자는 없는 듯합니다. 몽골 제국 황제의 무덤이라는 역사급 발견이 이란의 한 호숫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전설에 머무는 것인지—그 답은 여전히 카부디 섬의 절벽 너머에 잠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