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아서왕의 돌: 라틴어·오감 비문이 새겨진 6세기 묘비의 진실과 전설

영국 콘월(Cornwall)의 슬로터브리지(Slaughterbridge) 마을에는 캠퍼포드(Camelford)에서 틴태절(Tintagel)로 이어지는 도로 바로 옆, 18세기 팔머스 여사(Lady Falmouth) 샬럿 보스코언(Charlotte Boscawen)이 조성한 정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정원 한켠에는 라틴어와 오감(Ogam) 문자, 두 가지 비문이 새겨진 길이 약 3m의 고대 석비가 서 있습니다.

이러한 이중 비문석이 특별히 드문 것은 아닙니다. 아일랜드, 웨일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전역에서만 이미 400개가 넘는 유사 비문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오감은 중세 초기에 개발된 문자 체계로, 아일랜드어와 픽트어를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주로 서기 400년부터 600년 사이에 쓰였습니다.

아서왕의 돌: 라틴어·오감 비문이 새겨진 6세기 묘비의 진실과 전설

이 석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작가 리처드 케루(Richard Carew)가 1602년 저술한 『콘월 개관(The Survey of Cornwall)』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후 1848년에는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이 신화와 중세적 소재에서 영감을 받아 이 돌을 자신의 작품 속에 등장시키기도 했습니다.

라틴어 비문은 "LATINI (H)IC IACIT FILIUS M[]ARI"이며, 돌의 한쪽 모서리를 따라 배열된 오감 표기는 "LA[TI]NI» ᚂᚐᚈᚔᚅᚔ"입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를 '마카로(Macarus)의 라틴인 아들이 여기 잠들다'로 번역합니다.

아서왕의 돌: 라틴어·오감 비문이 새겨진 6세기 묘비의 진실과 전설

당시 브리튼에서 라틴어 이름은 흔한 편이었습니다. 이는 5~6세기에 도래한 아일랜드계 정착민과, 서기 410년에 끝난 로마 점령기 동안 라틴어 이름을 받아들인 현지 켈트족 사이의 통혼을 반영하는 결과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비문의 마지막 불완전한 부분을 "Magni Arturi", 즉 '위대한 아서'로 읽어 더욱 전설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그 배경에는 이 돌이 발견된 지역이 신화 속 카믈란(Camlann) 전투와 연결된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아서왕이 모드레드(Mordred)와 색슨 군세를 격파했으나 스스로도 치명상을 입었다는 그 전투의 장소로는 서머싯(Somerset)이나 솔즈베리(Salisbury) 같은 다른 후보지도 제안되어 있지만, 『캄브리아 연대기』는 이 전투를 서기 537년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해당 주제를 다룬 가장 오래된 문헌입니다.

아서왕의 돌: 라틴어·오감 비문이 새겨진 6세기 묘비의 진실과 전설

노르만 시인 웨이스(Wace, c.1115~c.1170)와 몬머스의 제프리(Geoffrey of Monmouth) 역시 후자의 1136년 저술 『브리튼 왕열전(History of the Kings of Britain)』에서 슬로터브리지의 캐멀 강(Camel River)을 아서왕 마지막 전투의 현장으로 명시적으로 언급합니다.

여기에 더해, 슬로터브리지와 매우 가까운 곳에는 캠퍼포드(Camelford) 마을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곳은 유명한 캐멀롯(Camelot)과 동일시되는 장소입니다. 틴태절 또한 인근에 위치합니다. 실제로 이 일대 전체가 아서왕 신화와 얽힌 장소들로 가득하며, 탐방 코스·전시·정보를 제공하는 박물관인 '아서왕 센터(King Arthur Centre)'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석비의 제작 연대는 6세기로 추정되는데, 이는 오감 계열 기념물로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수준입니다. 비문 어디에도 아서왕과의 연관을 시사하는 내용은 없지만, 대중의 상상력 속에서는 때때로 전설이 과학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 돌은 당대 무명의 켈트족 추장을 기리던 묘비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