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레스터 대학교(University of Leicester) 고고학 연구팀이 기원전 5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리타니아(Britannia, 로마인들이 그레이트브리튼 섬을 부르던 이름)를 침공했을 때 남긴 최초의 물리적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상륙 장소는 켄트 북동부의 페그웰 베이
이번 발견을 바탕으로 연구진은 로마군이 처음 상륙한 지점이 오늘날 잉글랜드 켄트주 북동쪽에 위치한 타닛 섬(Isle of Thanet)의 페그웰 베이(Pegwell Bay)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주목할 점은 이 위치가 카이사르 본인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세 가지 지형적 특징, 즉 바다에서 잘 보이는 곳, 넓은 만의 존재, 그리고 근처에 높은 지대가 있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알레시아와 흡사한 방어 도랑
레스터 대학교가 추진한 이 프로젝트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었습니다. 로마군의 공격 대상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인근 언덕에 대한 조사, 침공 당시 제작되거나 매몰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동전 등)에 대한 박물관 소장품 분석, 그리고 켄트 지역에서의 현장 발굴이 그것입니다.
조사의 계기는 타닛 근처 에브스플릿(Ebbsfleet)에서 발견된 방어용 도랑이었습니다. 이 도랑은 기원전 52년 갈리아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전투가 벌어졌던 알레시아(Alesia)의 로마 방어 시설과 놀랍도록 유사한 형태였습니다.
오늘날 에브스플릿은 해안선에서 약 900미터 떨어진 내륙에 있지만, 기원전 1세기에는 지금보다 훨씬 해안가에 가까워 있었습니다. 폭 4~5미터, 깊이 2미터에 달하는 이 참호에서는 기원전 1세기 토기 조각, 철제 무기, 그리고 '필룸(pilum)'이라 불리는 로마식 투창이 출토되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방어 시설이 카이사르 함대의 선박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요새화 작업의 일부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800척 함대가 하루 만에 상륙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곳
페그웰 베이는 카이사르가 주장한 대로 로마군 전체가 단 하루 만에 상륙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습니다. 무려 800척에 달하는 선박이 일제히 상륙하려면 폭 1~2킬로미터의 정면이 필요한데, 이 조건을 충족하는 곳은 이곳뿐이라는 것입니다.
카이사르는 또한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집결한 브리튼인들이 거대한 함대의 규모에 경악하여 고지대로 숨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역시 램스게이트(Ramsgate) 주변 섬에 펼쳐진 높은 지대의 존재와 부합합니다.

100년 후 클라우디우스 정복의 토대가 된 조약
프로젝트 수석 연구자인 콜린 하젤그로브(Colin Haselgrove)에 따르면, 카이사르가 체결한 조약들은 로마와 브리튼 통치 가문들 사이 동맹 관계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 덕분에 100년 후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브리타니아를 침공했을 때, 이들 우호 세력의 도움으로 정복이 비교적 신속하게 완수될 수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페그웰 베이가 그동안 상륙 후보지에서 배제되었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타닛은 독립된 섬이었으며, 오늘날에야 그레이트브리튼 본토와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