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연대 측정 결과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보다 무려 5세기나 앞선, 유럽인의 아메리카 대륙 최초 도착 시기를 밝혀냈습니다.

노르웨이 탐험가 헬게 잉스타드(1899~2001)와 그의 아내이자 고고학자인 안네 스틴 잉스타드가 수년간 연구해 온 끝에,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의 바이킹들이 사용하던 것과 똑같은 형태의 소규모 건축물 군집이 뉴펀들랜드의 랑스오메도우즈(L'Anse aux Meadows)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여섯 채의 주거지 기초와 더불어, 철이 실제로 제련되었음을 증명하는 다량의 슬래그가 함께 출토된 제철소 흔적도 확인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1021년, 최초의 유럽 정착민들이 이미 북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1960년 뉴펀들랜드 북단의 캐나다 유적지 랑스오메도우즈가 발견된 이후, 수많은 연구를 통해 제노바 출신 항해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10월 12일 서인도제도에 상륙하기 몇 세기 전부터 바이킹이 아메리카에 정착했다는 증거가 차근차근 확인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중세 아이슬란드에서 11~12세기에 발전한 이야기이자 전설인 '사가(saga)'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문제는 스칸디나비아 항해사들의 원양 선박이 과연 정확히 언제 아메리카 해안에 도달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나무테 연구가 내놓은 결정적 답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바이킹 집단의 도착이 적어도 500년은 앞선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지만, 그 구체적인 시점은 줄곧 논쟁거리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드디어 정확한 연도가 확정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의 마이클 W. 디(Michael W. Dee)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팀은 10월 20일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뉴펀들랜드에 최초의 바이킹 식민지가 건설된 해가 바로 1021년이라고 밝혔습니다. 즉, 딱 1000년 전의 일입니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이 탐험한 북대서양 지역. 랑스오메도우즈 유적지는 뉴펀들랜드 북부 반도에 위치해 있으며, 지도에는 노르드인들이 출발점으로 삼은 그린란드의 주요 정착지와 그들이 헬룰란드(Helluland), 마클란드(Markland), 빈란드(Vinland)라 명명한 지역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 R. Klaarenbeek
이러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연구진은 연륜연대학 분석, 즉 나무의 성장 테를 연구하는 방법에 의존했습니다. 분석 대상은 뉴펀들랜드의 바이킹 거주지로 추정되는 고고학적 맥락에서 회수된, 서로 다른 세 그루의 나무에서 나온 세 개의 목재 조각이었습니다. 연구진은 먼저 이 목재들이 당시 원주민들은 만들 수 없었던 금속 칼날로 깔끔하게 잘렸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이어서 나무테를 검사한 결과(각 테는 1년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벌목 연도가 1021년으로 특정될 수 있었습니다.
이 정밀한 측정이 가능했던 열쇠는 993년에 발생한 태양폭풍이었습니다. 이 폭풍은 높은 방사성탄소 피크를 남겼는데, 그 고유의 '서명'이 전 세계의 나무에서 동시에 발견됩니다. 연구진은 세 표본에서 이 신호가 기록된 테부터 나무껍질까지의 테 수를 세는 방식으로 벌목 시점을 계산했고, 그 답은 정확히 29개의 테였습니다.
논문 저자들에 따르면, 이 연도는 콜럼버스의 항해에 앞선 최초의 대서양 횡단 접촉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첫 번째 사례입니다. 참고로 2019년 다른 연구팀이 시도했던 이전 연대 측정은 서기 1100년에서 1200년 사이라는 넓은 시간 범위만을 제시하는 데 그쳤습니다.
* 사가(saga)는 중세 스칸디나비아 문학에 등장하는 신화적인 이야기들을 가리킵니다. 아메리카와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기록으로는 1075년 브레멘의 아담(Adam of Bremen)이 저술한 '함마부르크 교회사(Gesta Hammaburgensis Ecclesiae Pontificum)'와, 아리 토르길손(Ari Thorgilsson)이 쓴 '아이슬란딩가보크(Islandingabok, 아이슬란드인의 서)'에 언급된 내용을 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