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태어남도 죽음도 금지된 섬, 델로스의 쌍둥이 섬 '르네아'가 품은 고대의 비밀

르네아(Renea, 또는 리니아/Rinia)는 키클라데스 제도의 성스러운 섬 델로스 서쪽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약 700m 폭의 수로를 사이에 두고 델로스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고대 델로스에서는 출산과 죽음이 엄격히 금지되었기 때문에, 분만을 앞둔 여인들과 임종을 맞은 이들은 모두 이곳 르네아로 옮겨졌습니다. 즉, 르네아는 델로스 주민들의 삶의 시작과 끝을 함께 감싸 안았던 특별한 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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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노스 주민들은 두 섬 사이의 영원한 연결을 상징하는 의미로 이 섬을 그레이트 델로스(Great Delo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날 르네아는 행정상 미코노스 지방자치단체에 속해 있으며, 지자체는 농경지와 가축 방목 목적으로 이 땅을 주민들에게 임대하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르네아는 '오르티기아(Ortygia)'라고도 불렸으며, 아폴로의 쌍둥이 자매인 아르테미스(Artemis)의 탄생지로 여겨집니다. 남부 지역은 고대 델로스 영토에 속해 주민들의 출생과 사망의 공간으로 기능했습니다. 델로스의 비문에 따르면 아폴로 델리오스 성역은 이곳의 농경지를 소유하고 개인에게 임대하여 상당한 수익을 올렸으며, 아르테미스에게 봉헌된 신전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북부 지역(현재의 에파노 델로스/Epano Delos)에는 묘지와 농장, 그리고 다양한 부의 원천과 성소를 갖춘 '르네아 시(市)'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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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키클라데스 최초의 유물 큐레이터였던 디미트리오스 스타브로풀로스(Dimitrios Stavropoulos)와 디미트리오스 피파스(Dimitrios Pippas)가 르네아에서 제한적이지만 의미 있는 발굴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발견 유물을 완전히 문서화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묘지와 르네아 시 유적에 대한 발굴 및 현장 조사는 선사·고전 고대 유물 제21 에포레이트(Ephorate)와 프랑스 고고학 학교에 의해 이어졌습니다.

스타브로풀로스는 1898년부터 르네아 남동부 해안 탐사를 시작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무덤들은 수 세기 동안 도굴꾼들에게 약탈당했고, 그 결과 오늘날 르네아의 무덤 비석은 그리스 국내 박물관은 물론 베네치아, 베로나, 런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파리, 빈, 오슬로, 오데사, 상트페테르부르크, 코펜하겐 등 해외의 박물관과 컬렉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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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브로풀로스가 발굴한 무덤들은 '탄생과 죽음의 도시'라 불리는 르네아의 단면을 드러냈습니다. 그의 발굴 지침서가 된 것은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3권의 유명한 구절입니다. 기원전 426/425년 겨울, 아테네인들이 델로스의 완전한 정화를 단행했다는 기록입니다(첫 번째 정화는 이미 피시스트라토스 시대에 이루어진 바 있습니다). 투키디데스는 이렇게 전합니다. "모든 죽은 자와 그들의 관을 델로스에서 들어내라고 명령했다. 이제부터 이 섬에서는 누구도 죽거나 태어나서는 안 되며, 임종을 앞둔 이와 출산을 앞둔 여인은 르네아(Renea)로 옮겨져야 한다."

첫 발굴로부터 120년이 지난 후, 고고학자들은 현대 기술이 제공하는 수단을 활용해 다시 르네아로 돌아왔습니다. 과거 발굴 기록과 수 세기간 약탈당한 고대 묘지 유적에 대한 문서화를 완성하는 한편, 섬 전체 표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수행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섬을 육지와 해상에서 탐사하고, 모든 고고학 유적지와 유물을 찾아 문서화·분석하며, 르네아의 지질학적 특성을 규명하고 남부 지역 유적을 발굴하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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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아 묘지 인근 로마 여성 테르티아 호라리아(Tertia Horaria)의 대형 석관과 르네아의 대표 사자상이 있는 들판은, 눈에 보이는 수많은 장례 구조물과 대리석 건축 요소, 제단, 석관 등을 기록하기 위해 정비되었습니다. 이미 발굴된 니치(기중석)를 갖춘 대형 지하 장례 건물은 정리되어 지도에 표시되었고, 델로스 경쟁자들의 아고라(Agora of the Competaliasts)의 돔과 강한 유사성을 보이는 돔형 무덤 덮개 잔해 또한 정리·기록되었습니다.

모든 고대 유물은 철저한 기록 절차를 거쳤으며, 가시적인 유적은 각 기념물 설명서와 함께 지리정보(GIS) 프로그램에 입력되었습니다. 보안상의 이유로 부조 비석의 일부 파편만 수집되어 델로스로 옮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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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 조사 과정에서는 아폴로 델리오스 성역 소유였던 고대 농장 유적과 알려지지 않은 고대 도로가 새롭게 확인·문서화되었습니다. 동시에 델로스 공동묘지 가장자리의 중요 지점인 초마소부니(Chomasovouni)에서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인상적인 대리석 건축 파편이 노출되어 있고, 건물 기초가 델로스와 직접 시각적으로 마주하고 있어, 아르테미스 성소가 있던 자리일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신성한 의식을 관장하던 델로스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초마소부니로 오르는 길은 신전 외에도 제단, 식당, 숙소를 갖춘 성역으로 이어졌습니다. 연구진은 현장 청소와 건축 유적의 기록·측량·지도 작성, 나무와 관목 제거, 언덕 전체 표면에 대한 집중 조사를 병행했습니다. 성전 부지로 추정되는 정상 부근에서는 기초 일부가 발굴되었는데, 아마도 대형 제단의 잔재로 추정됩니다. 같은 장소에서는 주로 새 조각상 파편으로 이루어진 주목할 만한 조각품들이 수집되어 델로스로 옮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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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지질 지도는 채석장의 위치를 특정하는 것이 주요 목적 중 하나로, 동일한 조사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 결과 르네아뿐 아니라 아폴로 신전 기초를 포함한 델로스 건축물의 구조 재료 출처와 관련해서도 매우 흥미로운 성과가 도출되었습니다.

연구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은 비잔틴·후기 비잔틴·근현대에 이르는 모든 유적에 대한 문서화입니다. 그중에서도 오늘날 특별한 의미로 읽히는 것은 '카란티나(Karantina)'라는 이름이 붙은 해변에 남은 델로스(르네아) 공공 검역소의 유적입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콜레라 발생과 전염병 유행 시기마다, 지중해에서 그리스 항구로 항해하던 감염선과 비감염선 모두 이곳에서 5~40일간 의무 격리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알렉산드리아의 시인 콘스탄틴 카바피(Constantine Cavafy)도 1901년 첫 그리스 여행 때 이곳에서 이틀을 머문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