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시칠리아 북부 해안의 테르미니 이메레세(Termini Imerese)로 알려진 히메라(Himera)는 기원전 648년, 잠클레(Zancle, 현 메시나) 출신 정착민들이 세운 그리스 도시였습니다. 섬의 모든 그리스 도시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덕분에, 서부를 장악한 카르타고 세력의 통치 영역 경계선상에 놓인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습니다.
카르타고와의 첫 번째 충돌은 기원전 480년에 일어났으며, 오늘날 제1차 히메라 전투로 불립니다. 흥미롭게도 이 전투는 그리스군이 살라미스에서 페르시아군과 격돌한 바로 그날 벌어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전투에서 시라쿠사의 폭군 겔론(Gelon)과 아그리젠토의 폭군 테론(Theron)은 아밀카르 마고(Hamilcar Mago)가 지휘하는 카르타고군을 격파했습니다. 일부 사료에는 병력이 무려 30만 명에 달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확증은 없습니다. 겔론은 보병 5만 명 이상과 기병 5천 명 이상을 이끌고 히메라에서 테론의 지원을 받았으며, 그렇기에 크세르크세스의 침공에 맞서는 그리스 본토를 돕지 못했다고 합니다.
70년 후, 카르타고는 복수의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기원전 409년 한니발 마고(Hannibal Mago)의 지휘 아래 카르타고군은 히메라를 완전히 파괴했고, 이 도시는 다시는 재건되지 못했습니다. 그 자리, 폐허의 서쪽에는 새로운 도시 테르메스(Termes)가 건설되어 페니키아인과 그리스인들이 함께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두 전투의 유적이 2008년부터 2011년 사이에 발견되었으며, 이는 근래 수십 년간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성과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철도 확장 공사 중 고대·고전 시대의 매장지 1만 2천 곳 이상이 온전한 상태로 확인되었고, 풍부한 부장품을 갖춘 대규모 묘지도 함께 드러났습니다.
대규모 집단무덤은 최대 9곳으로, 그중 7곳은 기원전 480년의 전투와, 나머지 2곳은 기원전 409년의 전투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집단무덤과 다수의 개별 무덤에는 수천 명의 인골이 놀랍게도 질서정연하게 나란히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첫 번째 전투에서 몰락한 것으로 보이는 약 30구의 말 유해도 집단무덤 내에서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이베리아 양식의 청동기가 포함되어 있어, 서부 지중해 여러 지역에서 모집된 카르타고 용병 부대의 존재를 실증적으로 뒷받침합니다.
무덤들은 지하 3미터 깊이에 있었는데, 그 위를 수세기 동안 묘지를 보호해 온 매우 조밀하고 균질한 퇴적층이 덮고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층이 바다나 인근 강의 홍수로 인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다수 무덤이 전투와 직결된다는 결정적 단서는 남성 인골의 높은 비율입니다. 15세에서 57세 사이의 이들은 무기에 베이거나 맞아 생긴 깊은 상흔을 지니고 있었으며, 화살촉·창머리·검·단검 등이 시신 처리 전 제거되지 않은 채 뼈에 그대로 박혀 있었습니다.
동시에 기원전 409년 학살의 흔적도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노인과 아이까지 아우른 상당수 민간인 피해자들은 묘지 동쪽 구역, 즉 옛 성벽 앞 특히 상층부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생존자들은 남녀노소 수백 구의 해골을 뒤섞인 채 급히 매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칠리아에서 발견된 가장 큰 그리스 묘지의 소장 유물들은 10년 동안 창고의 16개 상자 속에 잠들어 있었지만, 이제 팔레르모로 옮겨져 레알 알베르고 데이 포베리(Real Albergo dei Poveri)에서 대중에게 공개될 예정입니다. 다만 테르미니 이메레세에 전용 박물관이 건립되기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임시 조치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