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정체불명의 로마 황제, 바를레타의 거상이 품은 미스터리

이탈리아 풀리아 지방, 아드리아해 연안에 자리한 도시 바를레타. 이곳 성묘 대성당 앞에는 로마 황제를 형상화한 5미터가 넘는 청동 거상이 우뚝 서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동상이 어떻게 이 도시에 유래하게 되었는지,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황제의 모습인지는 오늘날까지도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물론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다양한 전설과 학설이 이 거상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생생하게 재현된 황제의 초상

이 거상은 수염을 기른, 50세 전후로 보이는 황제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머리는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고, 얼굴은 비대칭적인데 특히 오른쪽이 더 넓고 둥근 형태입니다. 오른손은 위로 들어 올린 자세로, 원래는 홀(셉터)이나 창, 혹은 군단기인 라바룸을 쥐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훗날 십자가가 부착되었습니다. 왼팔은 팔꿈치를 구부려 망토에 가린 채, 권력의 상징인 구슬(오브)을 받쳐 들고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로마 황제, 바를레타의 거상이 품은 미스터리

황제는 두 겹의 튜닉을 입고 있는데, 아래쪽 튜닉은 오른쪽 어깨와 왼쪽 팔꿈치에서 살짝 드러납니다. 그 위에는 가죽 흉갑(퀴라스)을 착용했고, 고르곤 문양이 새겨진 허리띠가 헤라클레스 매듭(평매듭)으로 단단히 묶여 있습니다.

머리에 쓴 제관(디아뎀)의 폭은 약 15센티미터로, 가장자리는 배 모양 진주로 빼곡히 장식되어 있습니다. 아래쪽에 약 50개, 위쪽에 48개의 진주가 박혀 있으며, 중앙에는 보석을 끼우기 위한 사각형 홈이, 중간 양옆으로는 각각 17개의 보석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신비로운 유래, 전설과 기록

전설에 따르면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한 뒤 돌아오던 베네치아 선박이 난파하면서, 이 동상이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학적 검사 결과 이 동상이 바다에 잠긴 적 있다는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기록으로는 1231년 라벤나에서 거대한 동상이 발견되었고, 프리드리히 2세 황제가 이를 자신의 영지였던 풀리아로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아는 '바를레타의 거상'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13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앙주의 샤를 2세가 도미니코회 수사들에게 종을 주조하기 위해 동상을 녹일 수 있도록 허가했다는 내용입니다.

정체불명의 로마 황제, 바를레타의 거상이 품은 미스터리

1491년의 복원과 놀라운 재료

1491년, 조각가 파비오 알파노가 이 거상의 복원 작업을 맡아 결실된 부분들을 보완했습니다. 복원된 부분은 주로 다리, 팔뚝의 파편, 그리고 디아뎀 위의 머리 부분이었습니다.

팔레르모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이 거상은 서기 5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의복의 주름, 디아뎀의 테두리, 튜닉 부분을 제외한 동상 전체가 원래 금박으로 덮여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해당 부분들은 청동으로 마감되어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눈꺼풀 안쪽에서 황화은의 흔적이 발견되어, 눈의 흰자위가 은으로 만들어졌음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과연 누구인가? 황제 후보들

전통적으로 이 동상은 610년부터 641년까지 동로마 제국을 통치한 헤라클리우스 황제를 형상화한 것이라 여겨져 왔습니다. 실제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 상을 '에라클리오(Eraclio)'라고 부르며, 조각가의 이름으로 폴리포보스(Polyphobos)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F.P. 존슨과 같은 일부 연구자들은 20세기 초 이 견해를 지지하며 동상의 제작 시기를 서기 625년경으로 보고, 전설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정체불명의 로마 황제, 바를레타의 거상이 품은 미스터리

그러나 현실은 이보다 복잡합니다. 확실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호노리우스, 발렌티니아누스 1세, 테오도시우스 2세, 마르키아누스, 트라키아 출신 레오 1세 등이 모두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 헤라클리우스에 앞선 서기 4~5세기에 통치한 황제들입니다.

발렌티니아누스 1세와 테오도시우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1세 설은 동상의 머리가 그의 주화에 새겨진 초상과 닮았다는 점에 근거합니다. 테오도시우스 2세의 경우에는 서기 440년경으로 추정되는 대리석 두상과의 유사성이 지목되었을 뿐 아니라, 거상의 디아뎀에서 그의 어머니 소유였던 것으로 확인된 보석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트라키아 출신 레오 1세

457년부터 474년까지 동로마 황제였던 레오 1세의 경우, 이 거상이 콘스탄티노플에 세워진 그의 영예의 원주(공적 기념주) 꼭대기에 올랐던 상일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이 기둥의 파편들은 톱카프 궁전 인근 발굴 조사에서 실제로 발견된 바 있습니다. 고고학자 웅스 페슐로(Urs Peschlow)는 기둥의 복원도를 발표하며 거상의 크기가 기둥의 치수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밝혔습니다. 더욱이 이 동상은 자신의 이름을 딴 기둥을 세웠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상과 동일한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콘스탄티누스의 상 역시 오른손에는 창을, 왼손에는 구슬을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