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베링거 거짓말 돌(Lügensteine): 대학 교수를 몰락시킨 300년 전 최대 화석 위조 사기극

화석은 과거 생명체의 존재를 증명하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그러나 아담 베링거(Adam Beringer) 박사에게 발견된 '화석'들은 생명의 흔적이 아니라 자신의 학문적 생명이 끝나는 순간을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약 300년 전, 그는 독일 남부 뷔르츠부르크 인근에서 식물과 동물의 형상이 새겨진 화석 집합체를 발견했고, 이것이 훗날 눈부신 그의 경력에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이 화석들은 뤼겐슈타인(Lügensteine), 즉 '거짓말쟁이 돌'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세계 고생물학 역사상 가장 큰 사기극 중 하나를 촉발했습니다. 수많은 도덕적 교훈과 왜곡된 이야기가 얽혀 있지만, 이 사기를 전설로 만든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사기극의 중심에 '당대 최고의 권위자'가 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아니었지만요.

1667년 태어난 요한 바르톨로메오 아담 베링거(Johann Bartholomew Adam Beringer) 박사는 18세기 뷔르츠부르크에서 손꼽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뷔르츠부르크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학장을 역임했고 율리안 병원에서 진료 활동을 펼쳤습니다. 평소에는 전 세계 과학자들이 인용하는 학술 논문을 집필하는 데 시간을 보냈고, 남는 여가는 개인적으로 가장 열정을 쏟는 분야인 자연사 연구에 바쳤습니다.

베링거 거짓말 돌(Lügensteine): 대학 교수를 몰락시킨 300년 전 최대 화석 위조 사기극

여러 면에서 통속적이었지만, 그는 자연계의 놀라운 유물들을 모아 전시한 '호기심의 캐비닛' 소유주로도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현대 의학이 자연 요법에 크게 의존하던 시절, 그는 뷔르츠부르크 주교와 프랑코니아 공작의 주치의를 맡았으며, 1695년에는 관심과 재능을 인정받아 대학 식물원 관리인으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업적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상승하는 그의 명성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대학 내에서는 두 동료가 그를 반드시 무너뜨릴 것이라며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 왔습니다. 지리·대수학 교수 J. 이그나츠 로더릭(J. Ignatz Roderick)과 사서 게오르크 폰 에크하르트(Georg von Eckhart)는 베링거가 뷔르츠부르크 남쪽 아이벨슈타트 산의 화석에 애착이 깊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베링거 거짓말 돌(Lügensteine): 대학 교수를 몰락시킨 300년 전 최대 화석 위조 사기극

1725년 여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두 사람은 그가 직접 찾도록 산에 가짜 화석을 몰래 심어 두었습니다. 마침 베링거는 소장 컬렉션을 위해 땅속 보물을 캐내 달라고 청년 세 명을 고용한 상태였는데, 이들 중 적어도 한 명은 계획의 전모를 알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발굴자들이 장관을 이루는 화석을 하나씩 건네주자 베링거는 즉시 매료되었고, 이것이 훗날 '뤼겐슈타인'이라 불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화석들은 누가 봐도 특별했습니다. 트라이아스기 중기의 조개 석회암은 오늘날에도 아이벨슈타트 일대에서 흔히 발견되지만, 이 성상석들은 달랐습니다. 대부분 낮은 부조 형태로 만들어졌고, 화석 형상이 돌 안에 완벽하게 들어맞아 마치 손으로 새긴 듯 보였습니다. 해골 구조의 흔적을 보여주는 해부학적 디테일 또한 명백히 비정상적이었습니다. 게다가 물고기, 개구리, 새, 달팽이는 물론이고 천사 모양의 형상과 신의 이름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네 글자 'YHVH'가 새겨진 돌까지 섞여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많은 사람이 이 화석의 진위성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베링거는 굴하지 않고 1726년부터 저서 Lithographiae Wirceburgensis에 자신의 발견을 담아냈습니다. 이 책에는 204개의 표본이 담긴 21개의 판화가 수록되어 있으며, 라틴어로 집필된 원본은 훗날 멜빈 E. 얀(Melvin E. Jahn)과 다니엘 J. 울프(Daniel J. Woolf)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베링거 거짓말 돌(Lügensteine): 대학 교수를 몰락시킨 300년 전 최대 화석 위조 사기극
«이 돌에 표현된 형상, 특히 곤충의 형상은 돌의 크기에 지나치게 정확하게 맞춰져 있어 매우 꼼꼼한 조각가의 작품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관찰한 바를 절대적 진실로 믿었고, 화석이 가짜라는 사실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채 저술 전체를 완성했습니다. 그러다 책을 출판한 후에야 자신이 속았음을 인정하게 되는데,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요?

수년에 걸쳐 이 이야기의 결말은 다양한 일화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가장 널리 알려진 버전은, 자신의 이름이 번역된 히브리어 비문이 새겨진 돌을 발견한 후에야 비로소 발견물이 거짓임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일부는 그의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치른 장난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베링거 거짓말 돌(Lügensteine): 대학 교수를 몰락시킨 300년 전 최대 화석 위조 사기극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후 베링거는 돌을 캐낸 세 명의 발굴자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교수 동료인 로더릭과 에크하르트가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한때 존경받던 학자는 이 시점부터 점진적인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자신의 책을 되사 들여야 했다는 소문이 있으며, 몇 년 후 사망할 때까지 학문적 경력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사건은 장난을 꾸민 이들에게도 대가를 안겼습니다. 로더릭은 뷔르츠부르크를 떠나야 했고, 에크하르트는 장학금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이 돌들은 필트다운인(Piltdown Man)만큼 유명해지지는 못했지만, 과학계에서 학술 사기에 대한 논의를 되살리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독일에서는 가짜 화석만을 전담하는 '뤼겐슈타인 협회'까지 설립되었습니다.

베링거가 발견한 2,000개가 넘는 돌 가운데 약 600개는 현재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전역에 분포해 있습니다. 이 위조품들은 1961년 대영 박물관에 전시되었으며, 일부 화석의 모형은 독일 밤베르크의 자연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독창적인 작품으로서,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아이러니한 '위작'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은 Amusing Planet에 게재된 기사를 허가를 받아 번역 및 재출판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