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1944년 6월 6일, D-데이의 흔적을 캐다: 새로운 학문으로 떠오른 '제2차 세계대전 고고학'

고고학은 더 이상 아득한 옛날만을 다루는 학문이 아닙니다. 최근 고고학자들의 관심은 바로 '현대사', 그중에서도 1944년 6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목격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그 흔적이 되돌릴 수 없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1944년 6월 6일, D-데이의 흔적을 캐다: 새로운 학문으로 떠오른  제2차 세계대전 고고학
노르망디 해안에 남아 있는 대서양 방벽(Atlantic Wall)의 벙커

페가수스 다리, 상륙작전의 상징

프랑스 칸(Caen) 북쪽 오른강에 걸린 페가수스 다리(Pegasus Bridge) 유적지의 발굴 조사가 최근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다리는 1944년 6월 6일 상륙작전 당시 영국 제6공수사단 선발부대가 가장 먼저 확보하며 연합군의 노르망디 전투 개막을 알린 상징적인 장소로, 1962년 개봉한 대릴 F. 재넉(Darryl F. Zanuck) 감독의 영화 최장의 하루(The Longest Day)를 통해 영원히 기억에 남게 되었습니다.

현재 고고학자들은 이곳과 함께 독일군이 해안선을 따라 구축한 대서양 방벽의 3,000여 개 벙커(요새)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아울러 노르망디 보카주(bocage, 울타리로 구획된 밭) 지역에서는 역사 연구와 상호 보완하는 예방고고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로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 유적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고고학자는 사라져가는 기억을 이어받는 사람들”

“모든 것이 문서에 담겨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립예방고고학연구소(Inrap)의 고고학자 뱅상 카르팡티에(Vincent Carpentier)가 Sciences et Avenir와의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널리 알려진 일부 에피소드의 세부 사항과, 덜 알려진 에피소드의 실체를 발굴해냄으로써 노르망디 전투와 그 작전 무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한층 풍부하게 하는 데 기여합니다.”

이는 또한 목격자들의 점진적인 부재와 함께 잊혀져가는 사건들의 기억을 굳건히 다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이미 그랬듯이 말입니다. “고고학자는 바로 이 사라져가는 기억을 이어받기 위해 존재합니다.”라고 카르팡티에는 강조했습니다.

1944년 6월 6일, D-데이의 흔적을 캐다: 새로운 학문으로 떠오른  제2차 세계대전 고고학
포탄 탄피들. 칼바도스주 블랭빌쉬르오른(Blainville-sur-Orne)의 페가수스 다리 인근에서 발견된 영국 포병 진지의 흔적 © E. Ghesquière / Inrap

자연과의 시간 싸움

해안을 따라 늘어선 벙커들은 파도의 밀려옴, 해안 침식, 도시화의 압박 속에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른강 하구에 있던 야전병원이나 포로수용소 등 다른 유적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발굴된 유물을 항공사진이나 군사 기록 보관소에 남겨진 증언들과 교차 비교하면, 이러한 흔적들은 중대한 사건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줍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오른의 글라이더'의 흔적을 발굴할 수 있었습니다. 미군이 오마하 비치에 상륙해 셰르부르를 향해 진격하는 동안, 영국·캐나다 사단이 칸을 해방하기 위해 투입한 독특한 시제 항공기들이었죠.”라고 카르팡티에는 덧붙였습니다. “이 공세들은 당시로서는 완전히 혁신적이었던 장비들을 동원하는 놀라운 물류 역량을 필요로 했습니다.”

1944년 6월 6일, D-데이의 흔적을 캐다: 새로운 학문으로 떠오른  제2차 세계대전 고고학
블랭빌쉬르오른 유적지에서 발견된 영국 왕립공군(RAF) 호르사(Horsa) 글라이더의 라운델(국적 마크). 1944년 6월 6일 촬영 © Vincent Carpentier / Inrap

플뢰리쉬르오른의 캠프와 피난 채석장

칸 남쪽의 작은 마을 플뢰리쉬르오른(Fleury-sur-Orne)에서 고고학자들은 도시 남부를 봉쇄한 나치 독일의 SS 기갑사단과 수 주간 대치했던 영국·캐나다 부대가 사용한 캠프도 조사했습니다. 널리 알려져는 있지만 여전히 충분히 기록되지 못했던 사건들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처럼 병사들이 몸을 숨기기 위해 파놓은 참호와 함께, 탄약·모래주머니·헬멧·개인 물품이 뒤섞인 잡동사니 더미를 발굴했습니다.”라고 그는 이어 말했습니다. 또한 피난처로 쓰였던 중세 석회암 채석장이 처음으로 탐사되었으며, 현재 3D 레이저 스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1944년 6월 6일, D-데이의 흔적을 캐다: 새로운 학문으로 떠오른  제2차 세계대전 고고학
플뢰리쉬르오른, '생(Saingt)' 채석장 한 구획의 3D 스캔 이미지 © Cyril Marcigny

이 채석장은 폭격에 공포에 질린 칸 시민들이 피신했던 곳임을 입증합니다. “채석장 입구 중 하나는 전쟁이 끝난 뒤 봉쇄된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가족들이 생존하기 위해 마련한 가설적인 생활 흔적들을 발견했습니다. 짚 매트리스의 잔재, 긴 고통의 시간을 견디게 하려고 챙겨 넣은 어린아이의 장난감들, 그리고 의약품과 군용 의료 장비까지요. 군용 장비는 캐나다군이 도시 해방 후 의료 지원을 제공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폭격이 극심했을 무렵 민간인들을 쫓아내고 자신들이 그 자리로 들어가 피신했던 독일군이 버리고 간 물품들도 확인했습니다.”라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1944년 6월 6일, D-데이의 흔적을 캐다: 새로운 학문으로 떠오른  제2차 세계대전 고고학
1944년 생 채석장에서 민간인들이 사용한 공간에서 발견된 아이의 장난감, 화롯대, 의약품. 뼈들은 섭취된 동물의 유해로, 상당수는 폭격으로 죽은 동물을 피난민들이 식량으로 거둬들인 것들이다 © Cyril Marcigny / Inrap

역사 왜곡을 막는 고고학

세계 각지에서 활발히 진행 중인 이러한 '현대' 유적에 대한 고고학 연구는 역사의 자의적인 '재해석'과 특정 사실의 조작을 막는 데에도 크게 기여합니다. 영국 스태퍼드셔 대학교의 법의인류학자 캐롤라인 스터디 콜스(Caroline Sturdy Colls)는 2014년부터 강제수용소 유적을 연구해 왔으며, 폴란드에서 일부 세력이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절멸수용소 트레블링카(Treblinka)의 물질적 증거를 발굴했습니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베를린 자유대학교의 수잔 폴록(Susan Pollock)과 라인하르트 베른베크(Reinhard Bernbeck)가 나치가 구 템펠호프 공항 부지에 설치했다가 1936년 철거된 콜롬비아-하우스(Columbia-Haus)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수용소의 흔적을 발굴했습니다.

“우리는 인류학자, 지리학자, 역사학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습니다.”라고 뱅상 카르팡티에가 말했습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하루빨리 기록해 두어야 할, 나약하지만 결정적인 물질적 증언들입니다.

1944년 6월 6일, D-데이의 흔적을 캐다: 새로운 학문으로 떠오른  제2차 세계대전 고고학
1944년 7월, 폐허가 된 칸(Caen) 시가지에 홀로 서 있는 한 노인 © AFP

폭탄 아래의 칸

“칸과 그 주변 지역에 대한 폭격은 78일간 이어졌으며, 투하된 폭탄의 양 기준으로 제2차 세계대전 최대급의 융단폭격(carpet bombing)에 속합니다.” 발굴을 총괄한 Inrap의 고고학자 뱅상 카르팡티에가 설명했습니다.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한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폭격량만 2,500톤에 달했고, 7월 7일 단 하루에만 7,000톤이 넘는 폭탄이 도시에 쏟아졌으며, 7월 21일에는 25만 발의 포탄이 추가로 투하되었습니다.

노르망디 전투에서만 양측 합쳐 20만 명 이상의 병사가 사망하거나 부상당했습니다. 민간인들 또한 이 전쟁의 값비싼 대가를 치렀습니다. 칼바도스주에서만 20,000명, 센마리팀(Seine-Maritime)주에서 10,000명, 망슈(Manche)주에서 15,000명, 오른(Orne)주에서 4,00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더 읽을거리

  • 뱅상 카르팡티에,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노르망디 전투의 고고학(Archaeology of the D-Day and the Battle of Normandy), Éditions Ouest-France, 2014
  • 앤드류 납, 연합군의 폭탄 아래 프랑스인들, 1940~1945(The French under Allied Bombs. 1940-1945), Tallandier, 592쪽,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