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반왕두안 유적: 타이만 연안의 선사시대 고고학 유적지

지형

평야 위에 솟아 있는 언덕.

유적 일반 현황

반왕두안 고고학 유적은 타이만 연안에 위치하며, 낮은 평지에 구릉과 사구가 교차하는 지형을 이룬다. 이는 제4기에 염수와 담수의 흐름 작용으로 퇴적물이 쌓이면서 형성된 연안 퇴적 지형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해수면의 상승·하강과 파도의 작용이 더해진 결과다. 서쪽의 높은 산악 지대에서 발원한 후아이켐못(Huai Khem Mod)을 비롯해 후아이퐁찬, 후아이사이 등 6개의 작은 하천이 왕두안 늪으로 흘러든 뒤 왕두안 해변을 거쳐 바다로 유입된다.

봉왕두안(Bueng Wang Duan)은 좁은 수로를 통해 바다와 연결된 하구로, '조류 입구(tidal inlet)'라고도 한다. 과거 이곳은 해안선에서 깊숙이 오목하게 패인 만(灣)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옛 해양 하구였던 왕두안 늪과 그 가장자리를 이루던 오래된 구릉과 사구의 분포가 이를 뒷받침한다.

토양 특성은 전반적으로 옛 사주(沙洲) 퇴적층(Qbo)으로 나타나며, 중립~조립질의 모래로 구성되어 입자 크기가 중간 정도로 잘 마모되어 있고 조개 껍데기 파편이 섞여 있다(광물자원부 2008: 11–14). 지역의 경사는 서쪽 태국·미얀마 국경의 타나오스리 산맥에서 시작해 왕두안 해변의 타이만으로 이어진다.

해안선에서 안쪽으로 깊게 패인 늪지 분지 속 구릉 지형에 바다로 통하는 수로가 있어 담수와 염수 자원, 삼림 자원, 해양 자원이 풍부하다. 이러한 환경은 인간 정착에 매우 적합했으며, 실제로 옛 수로를 따라 형성된 구릉이나 오래된 사주 사이의 늪지 분지에서 고고학적 증거가 자주 발견된다(Bérénice Bellina 2017: 3; Payung Wongnoi 외 2009).

현재 이 일대는 코코넛 농원, 채소밭, 축산 목장 등 농업용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인구 밀도가 높지 않은 취락이 분포한다. 해변과 연안에서 어업이 이루어지고, 여러 구릉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유적지 서쪽에는 왕두안 기차역이 있으며 남부 철도가 이곳을 지난다.

평균 해수면 기준 고도

4미터

수계

타이만, 후아이켐못

지질 조건

이 지역은 제4기에 염수와 담수의 교체 작용, 해수면 변동, 파도의 침식·퇴적 작용으로 형성된 연안 퇴적 지형이다. 서쪽 산악 지대에서 흘러내린 6개의 소하천이 왕두안 늪으로 모인 뒤 바다로 배출되면서 오래된 사주 퇴적층(Qbo)을 이루었으며, 토양은 중립~조립질 모래에 조개 파편이 섞인 특징을 보인다(광물자원부 2008: 11–14). 전체 경사는 서쪽 타나오스리 산맥에서 동쪽 타이만으로 완만히 낮아진다.

고고학 시대

선사시대, 역사시대

시대/문화

후기 선사시대, 신석기 시대, 아유타야 시대

유적 유형

취락 유적, 묘지

고고학적 개요

태국 내외의 고고학자와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 유적은 왕두안 기차역 북쪽과 남동쪽, 역에서 반경 700m 이내에 위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즉 왕두안 호수 주변, 핫와나콘 국립공원 북쪽 지역으로, UTM 좌표(WGS84) 47N 578000E, 1291000N 및 47N 579000E, 1292000N 지점에 해당한다.

유적의 범위는 북쪽으로는 왕두안 골목(Soi Wang), 동쪽으로는 타이만, 남쪽으로는 핫와나콘 국립공원, 서쪽으로는 반톤켓과 반후아이사이에 이른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하면 반왕두안 유적은 왕두안 늪의 서쪽과 남쪽 일대를 아우른다. 왕두안 호수는 옛 해양 하구의 일부로, 후아이켐못, 후아이퐁찬, 후아이사이 등 최소 7개의 자연 소하천이 이 하구로 흘러들어 바다로 배출된다.

습지 내 늪지 분지라는 환경은 인간 정착에 적합했다. 담수와 염수의 작용으로 형성된 구릉이 자연 수변을 따라 분포하며 과거 하구 연안을 따라 위치한다. 이 지역은 해안선에서 안쪽으로 깊이 패인 지형에 바다로 통하는 수로가 있어 담수·염수 자원과 삼림·해양 자원이 풍부하다. 옛 수로 구릉 위와 하구(왕두안 늪) 주변의 오래된 사주 사이 늪지 분지에서도 고대 인류의 정착 흔적이 발견되었다.

발견 이래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 고고학적 증거를 보이는 구릉들은 봉왕두안의 서쪽(북쪽에 가까움)과 남쪽 지역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쪽 구릉 일부는 남부 철도 건설로 절단되었고, 남쪽 구릉 일부도 포장 도로로 잘려 나갔다. 발굴 결과 이들 구릉의 퇴적층은 인위적·자연적 요인으로 여러 차례 교란된 상태였다.

토층과 문화층, 출토 유물을 근거로 1차적으로 분석·해석하면, 반왕두안 지역은 후기 선사시대에 사람들의 생활·생계 공간으로 이용되다가 한동안 버려졌고, 아유타야 시대에 재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두 시기 모두 출토 유물의 양과 밀도로 미루어 소규모 취락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각 시기별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후기 선사시대

마제 석기(갈판돌),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모래가 섞인 조립질로 저온 소성되었으며, 표면이 매끈하고 무문인 것과 로프 무늬가 장식된 것이 함께 발견되었다. 그릇, 항아리, 대접, 단지 등의 형태로 손빚기와 물레 성형이 병행되었으며, 색은 갈색, 황갈색, 주황색 계열이다. 의도적으로 바닥에 구멍을 뚫은 토기도 확인되었고, 적색 사암으로 만든 숫돌과 부싯돌 파편도 출토되었다. 앙와신장(仰臥伸展) 자세의 매장 의례 흔적도 발견되었다.

정주 형태는 해양 하구(왕두안 늪) 주변 구릉 위의 소규모 취락으로, 바다·담수·육상의 자연 자원(식물, 동물, 광물)을 채집·이용하며 생활했다. 경작이나 가축 사육과 관련된 증거는 없으며,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유물도 확인되지 않아 다른 지역 취락과의 교류를 추정하기 어렵다. 금속 유물이 출토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이 취락은 아직 금속 사용을 알지 못하던 신석기 시대의 것이거나, 금속기 시대에 속하더라도 금속이 희소 자원이고 현지 산출 재료가 없어 사용하지 않았거나 극히 적게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향후 과학적 연대 측정을 통해 이 유적의 시대적 가치를 더욱 명확히 밝혀야 한다.

아유타야 시대

세립질 토기, 중국산 자기 용기, 올리브 녹색 단색 유약 자기, 잔이나 그릇류, 목문 장식 토기, 유약을 입힌 네 귀 항아리 등이 주요 출토 유물이다.

정주 형태 역시 해양 하구(왕두안 늪) 주변 구릉 위의 소규모 취락이었으며, 생계는 여전히 바다·담수·육상의 자연 자원(식물, 동물, 광물)에 크게 의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업이 주된 생계 수단이었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