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청동기시대의 검은 의례용이 아니었다… 실전 전투 기술을 입증한 새로운 연구

유럽 청동기시대 무덤과 유물 매장지에서 발견된 검들이 단순한 의례용 물건이 아니라 실제 전투에서 사용되었음을 밝혀내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청동기시대의 검은 의례용이 아니었다… 실전 전투 기술을 입증한 새로운 연구

청동기시대 검 세트

그리핀 전사의 무덤이 전하는 전투의 흔적

2015년 그리스 피로스(필로스) 미노스 유적의 무덤에서 발굴된 3,500년 된 인장은 오늘날 하나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노석에 정교하게 새겨진 이 인장에는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두 전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승자가 적의 목에 검을 깊이 찌르고 있는 가운데, 땅에는 자신의 무기를 팔 옆에 떨어뜨린 채 쓰러진 첫 번째 희생자가 누워 있다. 이 특별한 전투 장면은 청동기시대 검의 실제 용도를 규명하고, 나아가 당시 유럽 사회에서 개인 간 폭력과 전쟁이 차지했던 위치를 밝히려는 최근 연구의 취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청동기시대의 검은 의례용이 아니었다… 실전 전투 기술을 입증한 새로운 연구

피로스 그리핀 전사의 무덤에서 출토된 마노석 전투 장면. 출처: 신시내티 대학교 제공

기원전 17세기 말부터 유럽 곳곳의 무덤이나 금속 매장지에서 수천 점이 발견된 이 무기들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검을 이루는 금속 합금의 정확한 조성은 무엇이며, 조상들은 이를 어떻게 다루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영국 뉴캐슬 대학교 연구진은 이 시대 검에 남아 있는 수천 개의 손상 흔적과 미세 흔적을 현미경으로 분석했고, 복제품을 활용한 실제 검술 대결도 함께 진행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모든 청동기시대 검은 전투에서 실제로 사용되었으며, 오랫동안 통용되어 온 '의례적·상징적 용도'라는 가정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칼날을 벼리다

『저널 오브 아케올로지컬 메서드 앤드 띠어리(Journal of Archaeological Method and Theory)』에 게재된 논문에서 청동기 전투 프로젝트(BACP) 책임자 안드레아 돌피니(Andrea Dolfini)는 연구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레스터 대학교와 더럼 대학교, 대영박물관, 그레이트 노스 핸콕 박물관(잉글랜드) 소속 연구진은 우선 청동 장인 닐 버리지(Neil Burridge)에게 고고학적으로 잘 알려진 유형에 해당하는 청동검 일곱 자루를 재현하도록 의뢰했다. 이 복제 무기들은 이후 칼날끼리 부딪치거나 방패·창에 타격했을 때 남는 다양한 흔적을 기록하는 실험에 투입되었다.

청동기시대의 검은 의례용이 아니었다… 실전 전투 기술을 입증한 새로운 연구

청동 장인 닐 버리지가 제작한 청동기시대 검 복제품. 출처: BACP

이를 위해 연구팀은 영국 뉴캐슬의 중세 유럽 무술 클럽 '핫스퍼 방어 학교(Hotspur School of Defense)' 회원들과 협력하여, 15세기 검술 교범인 『안드레아스 리그니처의 검과 버클러』를 바탕으로 청동기시대에 실제로 벌어졌을 법한 사실적인 대결 시나리오를 연출했다.

청동기시대의 검은 의례용이 아니었다… 실전 전투 기술을 입증한 새로운 연구

충격 분석을 위한 실험적 대결 장면. 출처: 핫스퍼 방어 학교

연구진은 실험 고고학과 금속 마모 분석을 결합하여, 복제 무기에서 발견된 흔적들을 기원전 2천년기 말부터 1천년기 초에 제작된 원본 검 110자루, 즉 영국에 보관된 70자루와 이탈리아의 40자루에서 확인된 2,500개의 흔적과 비교했다. 논문 공동 저자이자 현재 독일 괴팅겐 대학교에 재직 중인 라파엘 헤르만(Raphaël Hermann)은 "이 흔적들을 통해 격돌 동작과 신체적 교전 유형을 무기에 남은 특정 마모 흔적, 특히 타격과 막기의 흔적과 연결 지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도구, 검

"인류 역사에서 검은 오직 상대를 다치게 하거나 죽이기 위해 발명된 최초의 도구입니다. 따라서 검은 무기 진화 과정에서 하나의 연대 표식이자 기술적 이정표가 됩니다." 유럽 선사시대 전문가이자 『무기로써: 인간이 전쟁을 발명한 날(By Arms. The Day Man Invented War)』의 저자인 고고학자 안 르우에르프(Anne Lehoërff)는 이번 연구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강조했다.

청동기시대의 검은 의례용이 아니었다… 실전 전투 기술을 입증한 새로운 연구

피로스 마노석에 새겨진 패배한 전사 조각의 디테일. 출처: 신시내티 대학교 고전학과 제공

"청동, 즉 구리와 주석의 합금으로 만든 검이 실제 기능을 하려면 주석 함량이 최소 8%, 최대 11~12%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표준화된 대량 생산품이 아니라, 기원전 3천년기 말 구리 합금 야금술의 탄생과 함께 등장한 청동 장인들의 작품이었습니다. 따라서 표준화된 합금 배합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조성은 기술적·미학적·경제적 기준에 따라 상당한 폭으로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전문 잡지 『사이앙스 에 아브니르(Sciences et Avenir)』와의 인터뷰에서 안 르우에르프는 이렇게 덧붙였다.

복제품과 원본의 충격·마모 흔적을 비교한 이번 연구가 무엇보다 입증한 것은, 청동기시대 전사들이 검을 무작정 휘두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전투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프랑스 국립 예방 고고학 연구소(Inrap)의 베네딕트 퀼리에크(Bénédicte Quilliec)가 선구적인 연구를 통해 이미 지적한 바 있기도 하다.

"칼날에 남은 상흔은 이 무기들이 전투에서 어떻게 쥐고, 어떻게 다루며 사용되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안 르우에르프의 이 설명대로, 피로스의 전사가 적의 상반신에 검을 찌른 장면은 당시 교전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즉 공격이 신체의 급소를 겨냥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강력한 살상력을 지닌 무기가 남긴 상흔은 수많은 골격 분석을 통해 이미 확인된 바 있으며, 이번 충격 흔적 연구는 그러한 분석을 한층 더 완성해 주는 성과로 평가된다.

* 출처: Anne Lehoërff, 『By Arms. The Day Man Invented War』, Belin,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