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마하사만 사원(Wat Maha Saman) – 아유타야 차오프라야 강변에 숨은 고대 불교 유적

마하사만 사원 개요

마하사만 사원(Wat Maha Saman)은 태국 아유타야 도시섬 남서부에 위치한 고고학적 유적입니다. 현재 시리얄라이 궁(Siriyalai Palace)의 뒤편, 즉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원래 차오프라야 강변을 따라 건립된 사원으로 강 맞은편의 왓차이왓타나람(Wat Chaiwatthanaram)과 마주 보고 있습니다.

해발 고도

해발 3.5~5미터

수계

차오프라야 강, 빠삭 강, 롭부리 강, 노이 강, 클롱 무앙(Khlong Muang)

지질 조건

중부 평야는 메핑 단층(Mae Ping Fault, 몽이 단층과 거의 연결), 우따라딧 단층(Uttaradit Fault, 남팟), 삼탑 단층(Three Pagodas Fault) 등 주요 단층의 운동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지각 변동은 백악기 후기부터 제3기에 걸쳐 일어났으며, 이후 태국만 남부가 열리면서 북부와 서북부 지역에 제3기 분지가 형성되고 남북 방향의 단층선이 만들어졌습니다(Bunopas, 1981). 그 결과 육지 위로 부채꼴 모양의 퇴적 구릉과 퇴적 평야, 수역, 호수 등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프라나콘시아유타야주는 중부 평야의 남부에 위치하여, 지하 깊은 곳에 큰 자갈층이 분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자갈과 모래 알갱이는 크고 둥근 형태를 띠며, 그 사이 공극에는 지하수가 고이고 점토층이 중간중간 끼어 있어 여러 층의 지하수 대수층을 이룹니다. 각 대수층은 수평으로 넓게 퍼져 있으며, 아래에는 점토층이 받치고 위를 덮고 있어 피압 대수층(confined aquifer)으로 분류됩니다. 이는 중부 평야 남부 지하수층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수문지질학적 특성입니다.

고고학적 시대와 유적 성격

시대: 역사 시대 / 문화: 아유타야 시기 (초기·중기·후기) / 유형: 종교 시설(사원)

고고학적 핵심 내용

정확한 건립 연기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아유타야의 귀족이나 부유한 인물이 세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하사만’이라는 명칭은 북방 도읍 전설에 등장하는데, 여기서 ‘사만(Saman)’은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은혜로운 짐승으로 숭배되던 대상을 가리킵니다. 북방 사람들이 도시로 강제 이주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만’ 숭배의 흔적이 아유타야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으며, 따라서 마하사만 사원은 도시섬에 거주하던 북방인, 혹은 수코타이 출신 사람들의 또 다른 생활권이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태국 예술국, 2008: 92).

또한 사원 앞 지역은 원래 반치(Ban Chee) 항구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곳은 강 맞은편 왓차이왓타나람으로 건너가는 나루터였으며, 아유타야 시대 서부 도시섬의 4대 중요 선착장 가운데 하나였습니다(태국 예술국, 2008: 92).

발굴 이전의 모습

발굴 전 사원 부지는 높은 언덕 위에 자리했습니다. 북쪽으로는 옛 해자가 지나며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연못으로 이어지는데, 이 도랑은 사원 건립 당시 판 흙으로 부지를 높이 쌓아 올리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아유타야 시대의 많은 사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축조 방식입니다.

주요 구조물: 대형 체디(탑)

마하사만 사원의 체디는 규모가 큰 탑으로 사원 서쪽에 위치합니다. 판석으로 만든 담장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계마석(sema stone)의 특징으로 미루어 한 쌍의 계마석으로 추정되며, 이는 아유타야 시대 사원에서 흔히 발견되는 형식입니다. 하부 기단은 주변이 무너졌지만 구조상 구형 기단으로 볼 수 있습니다. 종(鐘) 몸체 아래에는 연꽃 입 모양의 종받이 기단이 있고, 석고 장식은 아래를 향한 연꽃잎과 위로 솟은 연꽃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종 몸체 위에는 정방형 좌대가 놓이고 그 앞면에는 기둥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좌대 위에는 상부를 받치는 기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체디의 외관은 아유타야 후기의 체디 양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1994년 발굴과 복원 성과

1994년 태국 예술국(Fine Arts Department)이 마하사만 사원 내 고대 유적에 대한 발굴과 복원을 진행하면서 다음과 같은 고고학적 증거들이 추가로 확인되었습니다.

1. 역종형(倒鐘形) 원형 탑: 복원 이전부터 뚜렷하게 보이던 이 탑은 사원의 주탑으로 추정되며, 수코타이 시대 미술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아유타야 양식으로 발전한 형태입니다. 체디 동쪽에서는 하부 기단에서 약 30cm 떨어진 곳에 대좌가 발견되었고, 서쪽에서는 6.80×6.00m 크기의 기단이 기저부에서 돌출되어 있으며 연꽃 장식과 사자 다리 형태의 석고 장식 조각이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발굴된 벽돌 배열이 이후 보강된 탄싱 체디(Than Sing Chedi)의 기초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 우보솟(본당) 기초: 움푹 들어간 기초 형태로, 동·서 양측에 내전과 외곽 기둥 사이의 벽체 기초가 남아 있습니다. 모든 기둥은 팔각형으로, 회반죽을 발라 원형 기둥처럼 마감되었습니다. 지면 아래 우보솟 주변 8방위 모두에서 담장 기초의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판석 담장 중 북·동·남쪽에서는 우보솟을 두르는 내부 담장인 ‘감팽깨우(kamphaeng kaew)’가 발견되었습니다.

3. 라이 파고다(Rai Pagoda): 본당의 북서쪽과 남쪽에서 흙더미가 확인되었으며, 이는 라이 파고다의 기초로 추정됩니다.

그 밖에도 청동 불상, 문양 낙판, 토기, 유리구슬, 청동 팔찌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발견된 증거를 종합하면, 이 사원과 주탑은 아유타야 초기에 건립되어 이후 아유타야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개축과 보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자료 정리 및 데이터베이스 관리: 와티니 타놈폴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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