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거장들의 캔버스 뒤에는 엄밀한 기하학적 구조가 숨어 있습니다. 원근법을 '발명'한 이탈리아 화가들은 깊이의 착시를 만들어내며 세상을 표현하는 방식 자체를 혁신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탈리아 우르비노에 소장된 《이상적인 도시(Ideal City)》는 1480년에서 1490년 사이 익명의 화가가 제작한 작품으로, 원근법의 완벽한 시범작입니다. 건물과 바닥 타일의 기하학적 직선 덕분에 감상자의 시선은 필연적으로 중앙 신전 뒤에 숨겨진 소실점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 글은 '무한'을 주제로 한 Sciences et Avenir n°202 'Indispensables'(2020년 7월~9월호)에 게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평면에 세계를 담다
지오토, 다 빈치, 미켈란젤로, 프라 안젤리코… 르네상스 화가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사했습니다. 15세기부터 평면 위에 세계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발명하면서, 무한은 현실에 최대한 가까우면서도 전례 없는 시적 비전을 담은 그림 속에서 지각 가능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집트 벽화처럼 평면적이고 옆모습으로만 그려지던 인물들에서 얼마나 먼 길을 걸어온 것인지요. 당시 화가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기하학적 원근법으로 단련된 우리의 눈에는, 그들의 서투름이 오히려 일종의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서양에서 3차원 표현의 실험이 시작된 곳은 그리스와 로마였습니다. 화가 아가타르코스(기원전 5세기)는 무대 회화에 관한 저술에서 하나의 초점 중심에서 뻗어 나오는 소선(消線)의 개념을 언급하며 회화에 거리감의 착시를 도입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중세의 화가들은 사실적 묘사보다 이야기 전개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인물의 크기는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결정되었으니, 영주는 가신보다 크게 그려지곤 했습니다.
혁명은 르네상스의 막을 여는 시기, 즉 콰트로첸토(Quattrocento)의 피렌체에서 일어납니다. 파리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 학예사 피에르 퀴리(Pierre Curie)는 "경쟁 관계에 있던 이탈리아 도시들은 최고의 과학자와 가장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서로 다투어 영입했다. 그리고 지오토를 시작으로 이탈리아인들은 인간의 실제 시각에 가까운 표현을 추구했다"고 회고합니다.
2003년에 별세한 저명한 미술사가 다니엘 아라스(Daniel Arasse)는 저서 『회화의 역사』에서 "원근법의 성공은 메디치 가문의 정치 권력 탈환 작전, 즉 절제된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고 분석합니다. 1434년 코시모 데 메디치가 피렌체의 권력을 장악하자, 그는 금박과 부조로 화려하게 장식된 고딕 회화를 의뢰했던 경쟁 가문 스트로치와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위대한 후원자였던 그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기법, 즉 선형 원근법(linear perspective)을 발명하고 표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아라스는 이를 "특정 거리에서 한쪽 눈으로, 두 눈이 시야를 훑는 움직임이 아니라 정지한 상태로 바라보는 관람자를 전제하는, 완벽하게 임의적인 단초점 표현 체계"라고 정의하며, "이러한 공간과 시간의 기하화야말로 원근법의 근본적 혁신"이라고 강조합니다.
눈에서 종아리까지 이어지는 광선
피렌체 대성당 돔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는 약 1420년경, 비율을 정확히 유지하면서 건물을 도면에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원근법의 원리를 확립했습니다. 이어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가 1435년 이를 체계화했습니다. 철학자이자 화가, 건축가, 수학자였던 그는 원근법에 관한 최초의 과학적 연구를 저술했으며, 여기에는 관람자의 관찰 지점과 그림의 치수를 결정하는 과정이 전제됩니다.
선형 원근법은 수평선 위에 놓인 하나의 중심점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림 너머에서 만나는 듯 보이는 모든 평행선이 이 점으로 수렴하며 무한한 깊이를 암시하는데, 이것이 바로 소실선입니다. 알베르티는 바닥 타일이 그림 속으로 멀어질수록 겉보기에 작아지도록 구성하는 방법도 발견했습니다. 그 핵심 원리 중 하나는 관람자나 화가의 눈에서 시작되는 사선을 긋는 것으로, 사선이 소실선과 교차할 때마다 형성되는 사각형은 점점 작아집니다. 17세기 초 기하학에서 이론화된 이러한 사영법은 학문 전반을 새롭게 했고, 구체적 도형의 기하학은 추상 공간의 기하학으로 진화했습니다. 피에르 퀴리는 "선형 원근법은 눈의 작용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눈은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며, 정보를 이해하고 문화적 체계에 따라 해석하는 것은 두뇌다"라고 설명합니다.
화가들은 처음에는 현실의 재현에 집중했기 때문에 아직 '소실점'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알베르티는 이를 '눈의 광선'이라 불렀고, 이는 화면 어디에든 배치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는 《성 세바스티안》에서 소실점을 인물의 종아리 높이에 배치하여, 마치 영화의 클로즈업처럼 인물이 거인처럼 보이는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알베르티를 넘어선 기법들
알베르티의 방식 외에도 깊이의 착시를 만드는 다양한 기법이 존재합니다. 공기 원근법(aerial perspective)은 선명도와 명암 대비의 차이를 활용해, 대상이 멀어질수록 형태가 흐려지도록 표현합니다. 이와 유사한 스무아토(sfumato) 기법은 먼 곳의 윤곽을 부드럽게 녹여냅니다. 한편 토스카나 도시들과는 먼 일본에서는 소실선이 평행하게 유지되는 기사 원근법(등축투영)이 발전했으며, 이 방식은 오늘날에도 기술 도면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화가들은 원근법의 규칙을 완전히 익힌 뒤에도,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수태고지》 연작에는 기하학적 엄격함을 깨뜨리고 원근법에서 이탈하는 요소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종교 사상에서 성육신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는 믿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최후의 만찬》에서 완벽한 원근법의 천장을 구축했지만, 공간에 비해 지나치게 큰 식탁은 오히려 사도들에게 강렬한 존재감을 부여합니다.
단 몇십 년 만에 알베르티의 체계는 유럽 전역을 정복했고, 이후 5세기 동안 현실 표현의 지배적 규범으로 군림했습니다. 입체파 화가들이 형태와 부피를 분해하며 사실주의에서 벗어난 것이 그 첫 번째 균열이었습니다. 그리고 3D 시대가 도래하면서 원근법은 다시 전면에 등장해, 르네상스 관람객이 느꼈던 것만큼 강렬한 감동을 현대의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펜로즈의 불가능한 계단
끝없이 오를 수 있는 계단… 네덜란드 예술가 M.C. 에셔(M.C. Escher)가 1960년 리소그래프 《오르내림(Ascending and Descending)》에서 표현한 바로 그 역설입니다. 어떻게 계단이 우리를 항상 출발점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을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에셔에게 영감을 준, 영국의 정신과 의사 라이오넬 펜로즈(Lionel Penrose)가 상상한 '불가능한 도형'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는 직각으로 회전하는 네 개의 계단으로 구성된 계단을 2차원으로 표현했는데, 이 그림에서는 높은 지점도 낮은 지점도 식별할 수 없습니다. 반면 실제 3D 모델은 아래에서 위로 연속적으로 상승하는 계단을 가지지만, 끝부분이 시작점과 이어지지 않아 빈 공간이 남습니다. 특정 각도에서 착시를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원근법의 장치입니다.
이 착시는 정보가 눈에서 뇌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10분의 1초 동안 뇌가 수행하는 '지름길 처리'에 기반합니다. 이 짧은 순간 뇌는 무수한 해석 가능성 중 가장 그럴듯한 것을 선택하는데, 예컨대 추가 정보가 없으면 가까이 있는 두 선은 서로 닿아 있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모델에서 '출발'과 '도착'의 선이 그렇게 처리되는 것이죠. 에셔의 원근법 놀이가 그토록 혼란스러운 또 다른 이유는, 우리 뇌가 그림의 각 세부 요소에 대해서는 일관된 지각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 전체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