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발견된 신비의 점토 원반, 파이스토스 원반(Phaistos Disc). 백여 년간 학계의 난제로 남아 있었던 이 유물의 정체가 마침내 드러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원반에 새겨진 텍스트의 핵심 인물은 미노아 문명의 대지모신 아스타르테(Astarte)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파이스토스 원반이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종교적 찬가였음을 시사한다.

▲ 크레타 섬에서 발견된 파이스토스 원반(기원전 1700년경 제작 추정)
미노아 여신 아스타르테, 원반 해독의 열쇠
직경 16.5cm, 두께 1cm에 불과한 이 점토 원반은 기원전 1700년경으로 추정되며, 현재 크레타 헤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언어학자이자 헤라클리온 기술교육대학(TEI) 에라스무스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인 개러스 오언스(Gareth Owens)는 오랜 해독 연구 끝에, 텍스트의 핵심 인물 중 하나가 미노아 문명의 모신(母神)인 아스타르테라고 주장했다.
그는 고대 크레타 문자에 대한 비문학 연구를 바탕으로 유추 분석을 진행했다. 즉, 기원전 1800년경 미노아인들이 사용한 선형문자 A(Linear A)와, 기원전 1375년경 미케네인들이 사용한 선형문자 B(Linear B)를 함께 검토한 것이다. 선형문자 B는 앨리스 코버(Alice Kober)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1952년 영국의 마이클 벤트리스(Michael Ventris)가 해독에 성공한 바 있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종교 텍스트임이 분명하다"
오언스는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종교 텍스트임이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이번 결론은 그가 2014년 10월 옥스퍼드 대학의 음성학 교수 존 콜먼(John Coleman)과 함께 제기했던 가설을 확증한 것이기도 하다. 당시 두 연구자는 원반에서 'I-QE-KU-RJA'라는 문자열을 세 차례 확인했고, 이를 "임신한 여성, 혹은 임신한 여신"으로 번역했다. 'I-QE'는 '어머니' 또는 '여신'을 의미할 수 있다는 해석이었다.
이제 오언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파이스토스 원반의 한쪽 면에는 임신한 대지모신이, 다른 한쪽 면에는 미노아의 신 아스타르테가 담겨 있다고 본다. 1908년 발견 이후 100년 넘게 어떤 해독 시도도 뿌리치며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241개의 각인 가운데, 오언스와 콜먼은 이미 90%를 전사(轉寫)하는 데 성공한 상태다. 이번 발견으로 점토 원반의 마지막 미스터리 하나가 풀려나가고 있는 셈이다.

▲ 원반 양면에는 총 241개의 기호가 새겨져 있다. 서로 다른 기호는 45종이며, 2~7개의 기호로 이루어진 61개의 구간으로 배열되어 있다. © Luisa Ricciarini/Leemage
크레타의 고대 문자들
청동기 시대(기원전 3000~1200년)의 그리스에서는 두 문명이 꽃피웠다.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과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이다. 20세기 초, 고고학자 아서 존 에번스 경(Sir Arthur John Evans, 1851~1941)은 크레타 섬에서 무려 세 가지 문자 체계를 발견했다. 바로 선형문자 A, 선형문자 B, 그리고 상형문자(Hieroglyphic)다.
오늘날 학계는 미노아인들이 선형문자 A와 상형문자를 사용했으며, 선형문자 B는 미케네인이 만들어 그리스어를 기록하는 데 쓰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흥미롭게도 음절 문자인 선형문자 A는 아직까지도 해독되지 못했다. 이 문자가 새겨진 점판이 지금까지 너무 적게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파이스토스 원반의 완전한 해독이 선형문자 A 연구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