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학이 확인한 중국 건국 신화, 4000년 전 황하 대홍수의 흔적
중국에서 지질학자들이 중국 문명 최초의 왕조 성립의 기반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전설 속 대홍수의 흔적을 포착했습니다.

청하이성 황하 유역의 지스샤(集石峽) 협곡. 기원전 1900년경 대홍수의 증거가 발견된 곳이다.
황하의 대홍수, 하 왕조의 실체를 말하다
황하(黃河). 전통에 따르면 약 4000년 전 황허(黃河) 유역에 발생한 재앙적인 대홍수가 중국 문명 최초의 왕조인 하(夏) 왕조(기원전 2200년~기원전 1766년) 성립의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난징사범대학교(장쑤성) 지리학과의 우칭룽(Qinglong Wu)이 이끄는 지질학자·고고학자 공동 연구팀이 칭하이성의 지스샤 협곡과 그 동쪽 관팅 분지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한 것입니다.
파괴적인 폭우 이후 이 강의 거센 물살이 순식간에 수십 미터나 상승하며 가는 길목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습니다. 이 대재앙과 관련된 인골의 발견과 방사성 탄소(14C) 연대 측정 결과, 그리고 지층 자료를 종합하여 홍수의 시기를 기원전 1920년으로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역사 연대기와 고고학적 연대기가 마침내 일치하게 된 것입니다.

관팅 분지 황하 유역의 라자(喇家) 유적에서 발굴된 인골. 기원전 1900년경 대홍수의 참화를 보여주는 유물이다(©Cai Linhai).
신화 속 왕조의 시작을 알리는 중국판 '대홍수'와 우(禹) 제의 통치는, 종래 학계가 주장해 온 기원전 2200년이라는 시점보다 2~3세기 앞선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대홍수가 실제로 일어났다면 하 왕조도 실제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된 논문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타이베이 국립타이완대학교 인류학과의 데이비드 코언(David Cohen)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국 사학에서 대우(大禹) 제의 명성은 무엇보다 물을 다스리는 능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중국의 헤로도토스라 불리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실제로 이 군주가 추진한 수리 개발 사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아래 발췌 참조). 따라서 중국 최초의 왕조는 실제로 일어난 자연 재해라는 역사적 사건에 뿌리내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신화인가, 역사인가
다만 짚고 넘어갈 점이 있습니다. 중국 역사에서 '홍수'라는 주제는 하 왕조 건국 신화뿐 아니라 후계 왕조인 상(商) 왕조(기원전 1570년~기원전 1045년)의 전설 등 여러 설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전설들이 고대 중국의 심장부에 위치한 황하 숭배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봅니다. 영웅적인 군주가 파도를 제어하고, 만물과 인간을 조율하는 권능을 지닌 지도자로 그려지며, 그 덕이 세상 질서의 담보가 되는 서사입니다. 이는 모두 유교적 덕목의 정수로, '천명(天命)'이라 불리는 왕조 통치 원리의 씨앗이며, 중국 황제에게 붙여진 '천자(天子)'라는 칭호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사기』에 기록된 우왕의 치수 사업
사마천(기원전 145년~기원전 86년) 『사기(史記)』 발췌
우왕은 말했다. "넘치는 물이 하늘까지 솟았으니, 거대한 물바다는 산을 두르고 언덕을 잠갔으며, 평야의 백성들은 모두 물에 휩쓸렸다. [...] 나는 도랑을 한 척씩 더 깊게 파고, 수로를 열여섯 척씩 넓혀 강으로 연결했다."
* 척(尺): 고대 중국의 길이 단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