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라페루즈 탐험대 생존자의 진짜 최후를 밝힐 새로운 단서

라페루즈 탐험대가 자취를 감춘 지 200년이 지난 후인 1999년, 태평양 바니코로 섬에서 탐험대 생존자 일부가 살아남았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단서들은 일부 선원들이 섬을 떠나는 데 성공했을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있다.

라페루즈 탐험대 생존자의 진짜 최후를 밝힐 새로운 단서

1785년 세계일주 탐사 항해를 위해 라페루즈 백작에게 지시를 내리는 루이 16세 국왕. 니콜라 몽시오(Nicolas Monsiau, 1754~1837)의 그림.

두 세기 묵은 미스터리의 결말에 다가서다

18세기 프랑스가 조직한 가장 위대한 과학 탐사 항해로 평가받는 라페루즈 원정 — 사령관 라페루즈 백작의 이름을 딴 탐험이다 — 의 비극적 종말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788년 솔로몬 제도(태평양) 바니코로 암초에서 '아스트롤라브(Astrolabe)'호와 '부솔(Boussole)'호 프리깃함이 좌초한 뒤, 장프랑수아 드 갈로 라페루즈 백작과 그의 승무원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 원정에 깊이 관여했던 루이 16세는 1793년 처형 전날까지도 그들의 운명을 염려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최근 과학 저널 The Journal of Pacific History에 게재된 논문에서 개리 히치콕(Garry Hitchcock)은 비극 이후 프랑스 항해사들과 관련될 수 있는 19세기 문서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바니코로 난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1818년 언론 기사에 언급된 대로 임시 배를 타고 마침내 섬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제가 이 태평양 섬에서의 발견으로 확인했던 것보다 훨씬 앞선 이야기입니다'라고, 사이언스 에 방비누아(Sciences et Avenir)와의 인터뷰에서 IRD(프랑스 국제개발연구소) 고고학자 장크리스토프 갈리포(Jean-Christophe Galipaud)가 말했다.

라페루즈 탐험대 생존자의 진짜 최후를 밝힐 새로운 단서

2000년 11월 바니코로 섬 발굴 현장. 라페루즈 탐험대 프리깃함 난파 생존자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적이다. © Pierre Larue/AFP

1999년, 결정적 발굴의 순간

1999년 갈리포 연구자는 바니코로 파이우 해변에서 탐험대 두 척의 배에서 나온 유물을 담은 요새 유적을 최초로 발굴한 인물이었다. 이른바 '프랑스인 캠프'에서 그는 측정 기기 조각, 비율 나침반, 부싯돌, 머스킷 총알, 도자기, 못, 병 등을 수집했다. 이러한 물증들은 두 세기에 걸친 미스터리에 종지부를 찍었다. 즉, 선원들이 난파 이후에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후 2004년에는 프랑스 해저수중고고학연구국(Drassm)의 고고학자들이 산호에 뒤덮여 식별이 불가능했던 두 난파선 중 하나의 선미 갑판에서 인골을 발굴하기도 했다.

라페루즈 탐험대 생존자의 진짜 최후를 밝힐 새로운 단서

1818년 12월 29일자 '마드라스 쿠리어(Madras Courier)' 기사 발췌. © Garry Hitchcock

1818년 신문 기사가 밝히는 충격적 목격담

호주 연구자가 발견한 1818년 '마드라스 쿠리어' 기사는 '그해 9월, 시드니에서 콜카타로 항해하던 '클로딘(Claudine)'호와 '메리(Mary)'호가 토레스 해협의 머리 섬(Murray Island)에 정박했다가 4년 전 난파에서 살아남은 인도 선원 샤이크 주몰(Shaik Jumaul)을 구조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히치콕은 설명한다. 귀환 항해 도중 구조자들의 질문에 답하던 생존자는 이 섬에서 '영국산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검과 머스킷, 그리고 금시계와 나침반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라페루즈 탐험대 생존자의 진짜 최후를 밝힐 새로운 단서

북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 섬 사이 토레스 해협에 위치한 머리 섬의 항공 사진. © Garry Hitchcock

또한 그의 증언에 따르면 머리 섬 주민들은 30여 년 전 대보초(大堡礁)에 배 한 척이 좌초했으며, 그 배에 탔던 백인들은 모두 섬 주민들에게 살해당했지만 어린 소년 한 명만은 살려두어 그들이 직접 기렸다고 말했다고 한다. 호주 연구자는 이 세부 사항들이 라페루즈 탐험대 생존자들이 임시 배를 타고 바니코로를 떠났다는 오래된 구전 이야기와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분석한다. '이번 폭로로 추적할 새로운 실마리가 생겼으며, 머리 섬에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열렸습니다'라고 갈리포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항해: 1785년 브레스트 출발

1785년 8월 브레스트를 출발한 두 척의 프리깃함 — '부솔'호와 '아스트롤라브'호 — 는 라페루즈 드 갈로와 그의 친구 플뢰리오 드 랑글(Fleuriot de Langle)의 지휘 아래, 학자·식물학자·천문학자들을 실고 혼 곶을 돌아 4년에 걸친 대장정에 나섰다. 이들의 임무는 지구를 측량해 지도를 작성하고, 영국에 맞설 새로운 해상 항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식민지 야망과 패권 경쟁이 치열하던 그 시대, 이 태평양 원정은 1766년부터 영국 탐사를 이끌어 온 유명 탐험가 제임스 쿡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기도 했다. 1788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보타니 베이 앞바다에 도착한 라페루즈는 마지막 편지에서 토레스 해협을 거쳐 태평양을 빠져나와 1789년에는 프랑스로 돌아올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배와 함께 바다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1791년 당트르카스토(d'Entrecasteaux) 제독의 원정, 1827년경 뒤몽 뒤르빌(Dumont d'Urville)의 탐사 등 220명의 승무원 흔적을 찾기 위한 여러 원정이 시도되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1964년에야 프랑스 해군과 브로사르(de Brossard) 제독이 라페루즈의 배를 발견했고, 1999년에 이르러서야 갈리포와 솔로몬 협회 다이버들이 바니코로 섬 라군에서 일부 생존자의 흔적을 찾아낸 것이다.

라페루즈 탐험대 생존자의 진짜 최후를 밝힐 새로운 단서

바니코로 앞바다 라페루즈 탐험대 난파선에서 발견된 측량기 그래포미터(graphometer). © Pierre Larue/AFP

바니코로: 최초의 단서 발견

1826년 라페루즈 탐험대의 흔적을 최초로 발견한 공로는 아일랜드 출신 항해사 피터 딜런(Peter Dillon)에게 돌아간다. 그는 솔로몬 제도의 티코피아(Tikopia) 섬에서 유럽 기원의 물건들을 발견했는데, 이는 인접 섬 바니코로 주민들이 가져온 것이었다. 1827년 바니코로를 직접 방문한 딜런은 마침내 아스트롤라브호와 부솔호 두 배에 닥친 운명의 전모를 밝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