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프랑스 고고학의 거장 크리스티안 구디노(Christian Goudineau) 별세

2018년 5월 9일 수요일, 프랑스를 대표하는 고고학자이자 역사가, 작가였던 크리스티안 구디노(Christian Goudineau)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 세대에 걸친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준 위대한 학자였으며, 그의 삶과 업적을 돌아보고자 한다.

프랑스 고고학의 거장 크리스티안 구디노(Christian Goudineau) 별세

고고학자이자 작가, 역사가였던 크리스티안 구디노가 타계했다.

프랑스 고고학계의 깊은 애도

프랑스 고고학계가 큰 슬픔에 잠겼다. 갈리아와 갈로로마 문명 연구의 최고 권위자였던 구디노는 2018년 5월 9일, 향년 79세로 별세했다. 다섯 자녀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그는 유럽 고고학 연구를 이끌어 온 중추적인 인물이었다. 소셜 네트워크에는 동료 연구자들과 제자들의 추모 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의 넉넉한 인품과 폭넓은 학식, 어려운 학문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던 탁월한 소통 능력을 기리고 있다.

탄탄히 쌓아 올린 학문적 여정

1939년 4월 5일에 태어난 구디노는 1959년부터 1963년까지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 울름 캠퍼스)에서 수학했으며, 1962년 고전 문학 교수 자격시험(아그레가시옹)에 합격했다. 이후 로마 프랑스 학교에 진출해 1965년부터 1968년까지 연구 활동을 이어갔고, 귀국 후에는 엑상프로방스 대학교에서 1984년까지 후학을 양성했다.

1969년부터 1982년까지는 코트다쥐르 지역 고대 유물 관리국장을 맡아 베종라로멘(Vaison-la-Romaine) 유적 발굴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1984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 교수로 임용되어, 1905년 카미유 쥘리앙(Camille Jullian)이 개설한 '고대 국사' 강좌를 이어받았다.

비브락테 발굴을 이끈 지도자

같은 시기 그는 몽뵈브레(Mont-Beuvray) 유럽 고고학 센터 과학 이사회 회장직도 수행했다. 이곳에는 갈리아 부족 아에두이족의 오피둠(성채 도시)인 비브락테(Bibracte) 유적이 자리하고 있으며, 1985년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대통령에 의해 국가적 관심 유적으로 선포된 곳이다. 구디노는 2001년 이 직책에서 물러났고, 2010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 강좌에서 공식 은퇴했다.

연구서와 대중서, 그리고 소설까지

구디노는 학술 논문과 대중서를 두루 집필하며 대중과의 소통에도 힘썼다. 말년에는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의 재판(The Trial of Valérius Asiaticus)』과 같은 소설 창작에도 도전했는데,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저서로 남게 되었다. 그는 2007년 사이언스 에 베니르(Science et Avenir)와의 인터뷰를 통해 평생의 학문적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남겨진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