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고대 갈리아인들은 대마초를 넣은 와인을 마셨을까?

프랑스 클레르몽페랑에서 열린 전시회의 주제가 된 오베르뉴 지역 세바자(Cébazat)의 몽텔 3(Montels III) 유적 발굴에서는 흥미로운 유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무덤 안에서 발견된, 대마를 우려낸 와인이 담긴 그릇이다. 리옹 제2대학교 고고학 교수이자 코랑(Corent) 요새 도시 인근 발굴 총괄이며 고대 와인 전문가인 마티외 푸(Matthieu Poux)와 함께 이 발견의 의미와 당시 갈리아인들의 풍습을 자세히 들어본다.

고대 갈리아인들은 대마초를 넣은 와인을 마셨을까?

대마초 와인 공물이 함께 묻힌 갈리아 무덤 발굴 현장

2018년 2월 24일부터 5월 20일까지 바르갱 박물관(Bargoin Museum)에서 개최된 '발굴 현장에서' 전시는 2015년 몽텔 3 부지에서 진행된 사전 발굴 조사의 성과를 선보인다. 석상, 개 무덤, 와인 압착기 등 다양한 발견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대마초를 섞은 와인이 향응으로 부장된 한 무덤이다.

갈리아 무덤에서 나온 대마 혼합 와인, 무엇이 특별한가

사이언스 에 베니르: 갈리아 무덤에서 대마가 섞인 와인이 발견된 것이 왜 주목할 만한 일인가?

마티외 푸: 고대 와인에 관한 한, 전해 내려오는 여러 조주법과 분석 결과를 보면 사실상 거의 모든 향신 식물이 시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와인이 빠르게 시어버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마실 수 있도록 석고, 바닷물, 카멜그라스, 페누그릭(호로파라고도 불리는 초본 식물) 등 온갖 것들을 넣었다. 어떤 식물은 살균 성분을 지녀 세균 번식을 늦추는 효과가 있다(페누그릭이 대표적이다). 이런 방부·살균 효과에 단순히 향을 내는 효과까지 더해진다. 송진이나 타임 같은 향이 나는 와인이라면 더욱 좋았으니 말이다.

갈리아 시대에 대마—곧 칸나비스(cannabis)를 만들어내는 식물—의 첫 번째 용도는 직물이었다. 하지만 와인에는 수많은 종류의 식물과 향이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중에 대마가 발견된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이 식물의 존재만으로 정신활성 효과를 노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대마가 결코 무해하지 않은 만큼, 이 경우 갈리아인들이 그런 효과를 의도적으로 추구했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 갈리아인에게 와인이란?

갈리아인들에게 와인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와인은 여러 상징을 지녔다. 죽은 이를 기리고 신들에게 다가가는 매개였으며, 전쟁터에서 흐르는 피에 비유되기도 했다. 술은 청동기 시대부터 꿀술(mead), 맥주 등의 형태로 의례에 등장해 왔다. 갈리아인에게 와인은 필수품이 아니었다. 그러나 와인은 부가적인 가치를 지니며, 피·영웅·죽음 등과 얽힌 오래된 관습과 상징 위에 덧씌워졌다. 특히 피의 은유가 중요한데, 맥주는 이 은유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연회와 성소에서 와인이 소비되고 연출되는 모습을 발견하며, 무덤에서도 그 흔적을 찾는다. 가장 부유한 무덤에는 많은 암포라(양손잡이 항아리)가 부장되었고, 형편이 덜 한 사람들의 무덤에서는 와인이 주로 주전자나 물병에 담겼다. 사적인 소비도 있었다. 코랑 유적 발굴에 따르면 의례 때 엘리트들은 와인을 물로 희석하지 않고 원액 그대로 마셨다. 실제로 성소에서는 크라테르(krater)나 시툴라(situla) 같은 와인 희석용 그릇이 발견되지 않는다. 반면 주변 거주지, 즉 사적 공간에서 귀족들은 '로마식', 곧 물로 타서 마셨다.

고대 갈리아인들은 대마초를 넣은 와인을 마셨을까?

와인은 이런 암포라를 통해 갈리아로 수입되었다. Wikimedia Commons - User:Sailko - CC BY 3.0

와인 무역이 갈리아의 로마화를 이끌었나?

'와인 무역이 갈리아의 로마화에 역할을 했다'는 말이 사실인가?

이것은 좀 더 신중하게 봐야 한다. 1990년대까지 지배적이었던 견해는 와인이 '로마화'의 트로이 목마였다는 것이었다. 즉, 켈트인이 와인을 받아들이는 순간 심포지움(연회 문화), 로마식 식탁 예법 등을 함께 받아들였다는 논리다. 실제로 갈리아인들은 로마인에게서 와인을 샀다. 하지만 내 연구에 따르면, 와인은 토착 관습 위에 접목되었을 뿐 오랫동안 믿어져 온 것처럼 갈리아 사회의 제도적·이념적 운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았다. 갈리아인들은 와인을 수입했지만, 그것에 딸린 이념과 관습까지 수입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와인을 자신들의 의례 체계 안으로 흡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