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공책(Notebooks of Egypt)’ 다섯 번째 화에서는 고대 테벤(Thebes) 무덤 벽화를 연구하는 조사단이 지난 40년간 고대 테베 서안에서 활동해 온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명예연구소장 크리스티앙 르블랑(Christian Leblanc)의 업적을 되돌아봅니다.
왕비들의 계곡, 네페르타리 여왕 무덤 속 여왕의 초상 ©LAMS/MAFTO/CNRS
왕비들의 계곡과 잃어버린 왕비들
크리스티앙 르블랑은 오랫동안 이른바 ‘왕비들의 계곡(Vallée des Reines)’에서 제19왕조와 제20왕조, 즉 람세스 시대의 왕비들과 왕자들의 무덤을 묵묵히 발굴해 왔습니다. 그러나 기념물을 통해서만 그 존재가 알려진 제18왕조의 많은 왕비들은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본 왕비들의 계곡 ©LAMS/MAFTO/CNRS
이들의 미라는 실제로 사제들이 숨겨둔 집단 매장고에 모셔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881년 데르 엘 바하리(Deir el-Bahari) 근처에서 발견된 은닉처가 바로 그런 곳이었는데, 이곳에는 무려 40명에 달하는 이집트 통치자들의 유신이 봉안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오늘날 카이로 박물관 미라 전시실에서 람세스 2세의 미라를 비롯한 위대한 파라오들과 함께 안식하고 있습니다.
카이로 박물관에 보관된 람세스 2세의 미라 ©LAMS/MAFTO/CNRS
왕가의 계곡, KV7 무덤의 도전
크리스티앙 르블랑과 그의 팀은 25년 넘게 이 위대한 파라오의 ‘영원의 기념물’, 즉 기념 신전(‘수백만 년의 궁정’)인 라메세움(Ramesseum)과, 유명한 왕가의 계곡에 자리한 영원한 안식처인 KV7호 무덤을 연구해 왔습니다. 무덤 내부의 정리 작업은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이 무덤의 발굴은 19세기 이래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시켜 왔습니다. 흙태류(mudslide)가 반복적으로 무덤을 덮치며 단단하게 굳은 퇴적층을 형성했고, 지질학적으로 이미 균열이 많던 석회암은 이 거대한 지하 묘소의 하부에서 문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 버렸기 때문입니다.
위험천만한 이 탐사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크리스티앙 르블랑 특유의 집요함과 끈기가 필요했습니다. 이제 이 무덤은 대중에게 공개되기 전에 대규모 지지 및 복원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곳은 테베에서 가장 큰 왕실 무덤 중 하나입니다.
북쪽에서 바라본 라메세움 ©LAMS/MAFTO/CNRS
라메세움: 25년의 발굴과 복원
MAFTO(테베 서안 프랑스 고고학 조사단)는 카이로의 고대 이집트 연구·기록 센터(CEDAE)와 긴밀히 협력하고, 라메세움 보존 협회의 결정적인 재정 후원 아래, 거의 6헥타르에 달하는 종교 복합단지인 라메세움에 대해 학술 조사, 복원, 가치 재조명 사업에 4분의 1세기를 바쳐 왔습니다. 이 유적은 19세기 말부터 여러 팀에 의해 발굴되어 웅장하고 낭만적인 폐허로 드러났으며, 특히 높이 20미터, 무게 약 1,200톤에 달하는 거대한 화강암 단석 콜로서스(석상) 잔해는 세계에서 조각된 가장 거대한 석상 중 하나로 꼽힙니다.
라메세움 제1중정을 장식했던 화강암 콜로서스의 웅장한 잔해 ©LAMS/MAFTO/CNRS
프랑스 팀의 인내심 있는 발굴은 그동안 외면당했던 유구들에 대한 조사로도 이어졌고, 그 결과 이 유적의 복잡한 역사가 밝혀졌습니다. 이곳은 더 이상 단순히 람세스 2세의 신전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이 숭배 공간은 처음에는 중왕국 시대의 일반 백성 묘지였고, 그 존재는 새왕국 초기까지, 아마도 하토르(Hathor) 계열의 지역 신에게 봉헌된 숭배 성역을 중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이 공간은 완전히 평탄화되어 새로운 성역을 받아들였는데, 그 원래 건축 연대는 제18왕조 말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람세스 2세는 즉위 초에 아직 공사 중이지만 상당히 진척된 상태였던 이 건물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확과 농경의 다산 신 민(Min)을 기리며 첫 이삭을 베는 람세스 2세 ©LAMS/MAFTO/CNRS
신전 벽면에는 위대한 람세스의 통치를 보여주는 장면들, 그중에서도 유명한 카데시(Kadesh) 전투의 행로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신전은 무엇보다 이집트 최고의 신 아몬(Amun)에게 봉헌된 숭배의 공간이며, 그 도상 프로그램 전체가 파라오의 신격화를 위해 짜여 있습니다. 이를 통해 파라오가 신성과 하나가 되어 수백만 년 동안 코스모스의 질서 유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라메세움 다주실(hypostyle hall)의 360도 파노라마 ©LAMS/MAFTO/CNRS
라메세움에는 신전 운영을 담당했던 수백 명의 사제들이 존재했던 흔적 또한 남아 있으며, 오늘날 우리는 이들이 남긴 채색 장례 예배당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석조 신전 주위에는 진흙 벽돌 구조물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곳에는 부엌, 곳간, 지하 저장고, 그리고 이곳에서 매일 행해지는 의례에 쓰일 꿀, 기름, 연고, 향료 창고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수많은 농업 및 수공업 장원의 생산물을 집결시킨 이 비축물들은 왕실 관리들의 지역 공동체, 그중에서도 서쪽으로 수백 미터 떨어진 모범 마을 데르 엘 메디나(Deir el-Medina)의 장인 공동체를 먹여 살리는 데도 쓰였습니다. 왕가의 계곡 무덤을 팔고 장식하기 위해 엄선된 이 노동자들이 어느 날 역사상 최초의 파업(피켓 시위)을 일으킨 곳이 바로 라메세움이었습니다. 쇠퇴에 직면한 파라오 체제로부터 그들이 몇 달째 임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숭배의 공간으로서의 삶과 쇠퇴
고고학은 또한 이 ‘영원의 기념물’들이 사실 영원할 생각은 없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람세스 2세가 거대한 지하 묘실에 안장된 지 100년 남짓 지나자 신전은 경제적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부속 건물들은 해체되었고, 그 일부 벽돌과 석재는 멀지 않은 곳에 람세스 4세가 세운 그만큼 웅장한 새 기념 건축물에 재사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석조 신전 자체는 계속 숭배의 대상으로 남았고, 왕족과 수많은 사제들의 봉분과 예배당을 갖춘 새로운 묘지가 그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몇 세기가 흐른 뒤, 이 신전은 결국 몇 킬로미터 남쪽에 그리스 출신 통치자들, 즉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세운 건축물들에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좋은 돌값이 비싸진 상황에서 람세스 2세의 신전은 더 이상 신 아몬이 머물 뜻을 두지 않는 폐허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성스러운 페르세아(persea) 나무 아래에 앉은 람세스 2세를 보여주는 벽면의 3D 스캔 ©LAMS/MAFTO/CNRS/insightdigital.org
곧 이곳은 그리스도교의 신의 영역이 되었고, 헬리오폴리스의 페르세아 나무, 즉 파라오 왕권의 상징인 계보수 아래에 앉은 람세스 중 가장 위대한 자의 부조가 여전히 보이던 한 홀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4분의 1세기에 걸친 노력 덕분에 MAFTO 팀은 인내와 열정으로 고대 테베에서 특히 매혹적인 이 지역의 길고 복잡한 역사를 밝혀냈습니다. 그러나 경제 복합단지의 절반 가까이는 아직 발굴과 복원이 남아 있어, 이 웅장한 폐허를 찾는 관광객들이 그 권위를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다급한 방문객들에게 종종 지나치기 쉬운, 이곳만의 독특하고 매혹적인 매력을 지키면서 말입니다.
셸리의 시에 영감을 준 화강암 콜로서스의 3D 렌더링 ©LAMS/MAFTO/CNRS/insightdigital.org
오자만디아스(Ozymandias)
계몽주의와 구체제에 대한 혁명의 시대였던 19세기, 자유를 사랑하는 한 영국 시인의 눈에 람세스 2세 석상의 폐허는 ‘왕 중의 왕’이 바랐던 것보다 덜 영속적인 거대 건축물들의 허무함을 상징했습니다.
다음은 1817년 셸리(P. B. Shelley)가 쓴 시 〈오자만디아스〉입니다.
나는 고대의 나라에서 온 한 나그네를 만났노라.
그가 말하되, “거대하고 몸통 없는 돌다리 두 개가
사막에 서 있네. 그 근처 모래 위에는
반쯤 파묻힌 채 부러진 얼굴이 누워 있는데,
찌푸린 미간, 오그라든 입술, 냉담한 지배의 비웃음이
조각가가 저 정념들을 읽을 줄 알았음을 말해 주네.
무생물에 새겨진 채 아직도 살아 있는 그 형상들은,
그것을 본떠 만든 손과, 그 마음을 키운 심장에게 전하노라.
받침돌에는 이런 글씨가 새겨져 있네.
“나는 오자만디아스, 왕 중의 왕이라.
내 위업을 보라, 강대한 자들아, 그리고 절망하라!”
그러나 그 거석의 폐허 주변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노니
저 넓고 황량한 모래만이 끝없이 펼쳐질 뿐.”
‘이집트 공책’ 시리즈
1화: 고대 이집트 화가들은 어떻게 작업했는가?
2화: 낙타몬(Nakhtamon)의 장례 예배당 발견
3화: 이집트 회화의 안료
4화: 채색 벽면의 현대적 기록화
5화: 람세스 2세의 영원의 기념물 재발견
6화: 빛으로 드러내는 안료, 가시광선과 비가시 영역
7화: 이미지로 체험하는 현장 연구
8화: 네바문(Nebamon)과 이푸키(Ipouky) 무덤 벽화 연구의 시작
9화: 아멘호테프 3세 치세, 두 예술가가 함께 쓴 무덤
10화: 고대 이집트 예술가 아멘우아수(Amenouahsou)의 무덤이 말해주는 것들
11화: 이집트 미라의 기이한 용도들
12화: "왜 모든 예술가들이 여기 오지 않는가?"
13화: 이집트인들은 인물을 왜 측면으로 그렸는가?
14화: 이집트 무덤에서 관찰하는 장인 기술
15화: 이집트 향료에 대하여
16화: 이집트 팔레트의 색들
17화: 이집트어에는 '예술'을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
18화: 이집트 과학 탐사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