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세기 스페인의 탐험가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Sebastián Vizcaíno)는 태평양 연안을 탐사하며 당대 최고의 항해 기술을 활용했습니다. 그가 바다에서 길을 찾고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한 대표적인 도구들을 소개합니다.
1. 아스트롤라베(Astrolabe)
아스트롤라베는 지평선 위에서 천체의 고도를 측정하고 위도와 경도를 계산하는 데 사용된 고대 천문 관측 기구입니다. 이 기구는 가장자리에 눈금이 새겨진 둥근 황동 원판과, 중심 축을 기준으로 회전할 수 있는 '알리다데(alidade)'라 불리는 움직이는 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알리다데 끝의 포인터를 천체에 맞춰 정렬한 뒤, 포인터가 가리키는 눈금 값을 읽으면 해당 천체의 고도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선원들은 별의 위치를 근거로 자신이 위치한 위도를 정확하게 산출할 수 있었습니다.
2. 크로스 스태프(Cross-staff)
크로스 스태프는 '십자막대'라고도 불리며, 천체의 고도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된 또 다른 고대 천문 기구입니다. 긴 자형 몸통에 그것과 수직으로 교차하는 십자형 막대가 부착된 형태로, 십자 막대에는 동일한 간격의 눈금이 표시되어 있고 몸통에는 각도 단위의 눈금이 새겨져 있습니다.
측정할 때는 몸통을 수직으로 세운 상태에서 십자 막대를 천체와 일직선으로 정렬하고, 천체의 위치에 해당하는 십자 막대의 칸 수를 몸통의 눈금에서 읽어내면 됩니다. 아스트롤라베보다 구조가 단순하여 실용성이 높았지만, 태양을 직접 응시해야 하는 위험이 있다는 단점도 있었습니다.
3. 자기 나침반(Magnetic Compass)
자기 나침반은 지구의 자기장을 이용해 방위를 확인하는 항해 도구입니다. 축 위에서 자유롭게 회전할 수 있는 자석 바늘이 핵심 부품으로, 바늘은 지구 자기장의 방향에 따라 스스로 정렬됩니다.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통해 북·남·동·서의 기본 방위를 파악할 수 있었으며, 시야가 좁은 안개 낀 바다나 밤바다에서도 방향 감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필수적인 항해 장비였습니다.
4. 납추와 줄(Lead and Line)
납추와 줄은 해저 수심을 측정하기 위한 간단하지만 중요한 도구입니다. 추 역할을 하는 납 덩어리에 끈을 연결하고, 줄에는 패덤(fathom)이나 피트 단위의 눈금을 표시했습니다.
측정 방법은 매우 직관적입니다. 납추를 물속으로 내려 바닥에 닿을 때까지 기다린 후, 수면에 해당하는 줄의 눈금을 읽으면 그 지점의 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얕은 여울이나 암초 지대를 미리 파악해 좌초 사고를 예방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5. 모래시계(Sand Glass)
모래시계는 시간을 측정하기 위한 간단한 장치입니다. 좁은 목으로 연결된 두 개의 유리 구슬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쪽 구슬에는 모래가 담겨 있고 아래쪽 구슬은 비어 있습니다.
모래시계를 뒤집으면 모래가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흘러내리는데, 모래가 전부 흘러내리는 데 걸리는 일정한 시간을 기준으로 시간을 측정했습니다. 배에서는 주로 30분 단위의 짧은 모래시계를 사용해 교대 근무 시간을 관리하고, 속력 계산의 기준 시간으로 삼았습니다.
마치며
아스트롤라베와 크로스 스태프로 위치를 파악하고,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으며, 납추와 줄로 수심을 확인하고, 모래시계로 시간을 재던 것처럼, 비스카이노의 탐사는 이러한 도구들의 조합 위에서 가능했습니다. 현대의 GPS와 같은 정밀 장비 없이도 바다를 건너던 선원들의 지혜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