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잊혀진 중세 청색 안료 '폴리움', 수백 년의 수수께끼가 풀리다

15세기 말까지 중세의 채색 필사본 장식가들은 보랏빛이 감도는 선명한 파란색을 구현하기 위해 '폴리움(folium)'이라 불리는 염료를 사용했습니다. 오랜 세월 잊혀졌던 이 색소는 최근 중세 필사본 연구를 통해 포르투갈 과학자들이 그 흔적을 찾아내고 성분까지 되살려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잊혀진 중세 청색 안료  폴리움 , 수백 년의 수수께끼가 풀리다중세의 장식 필사본과 함께 사용된 잊혀진 파란 안료.

중세 염료 레시피를 되찾다

중세 내내 수도원의 스크립토리움(필사실)에서 일하던 수사들은 필사본에 깊은 파란색을 입히기 위해 식물에서 추출한 인디고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파란색이 있었으니, 바로 '폴리움'입니다.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염료 배합법에서 자취를 감춘 이 색소는 이후 어떤 문헌에서도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리스본 노바 대학교 연구팀이 15세기에 집필된 염료 제조 전문 문헌을 바탕으로 폴리움을 되살려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구진은 이 색소의 핵심 원료가 Chrozophora tinctoria L. A. Juss라는 식물임을 확인했으며, 그 결과는 국제 학술지 Science Advances에 게재되었습니다.

잊혀진 중세 청색 안료  폴리움 , 수백 년의 수수께끼가 풀리다포르투갈 마프라 국립궁전(National Palace of Mafra) 컬렉션의 기도서와 도면. ⓒ Maria Joao Melo 외

그동안 폴리움의 파란색 분자 구조는 베일에 싸여 있었고, 이 미스터리는 리스본 노바 대학교 연구진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우리 연구실의 주요 연구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중세 문헌을 분석해 장식화에 사용된 색채를 규명하고 그 레시피를 재현하는 것"이라고 이번 연구를 이끈 마리아 조앙 드 멜루(Maria João de Melo) 박사는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12세기의 『테오필루스(Theophilus)』나 14세기의 『몽펠리에 필사본: 다양한 기술의 서(Liber diversarum arcium)』 등 여러 고문헌을 탐색하던 끝에, 15세기에 편찬된 『책을 장식할 모든 빛깔을 만드는 법에 관한 책』이라는 제목의 문헌을 발견했습니다.

잊혀진 중세 청색 안료  폴리움 , 수백 년의 수수께끼가 풀리다『책을 장식할 모든 빛깔을 만드는 법에 관한 책』(LKSK, 15세기), 유대-포르투갈어판. ⓒ Maria Joao Melo 외

이 필사본은 당시 유대-루시타니아 공동체, 즉 세파르드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히브리 문자로 적힌 중세 포르투갈어로 작성되었습니다. 박해를 받던 이 공동체는 15세기 말 종교재판소에 의해 포르투갈 왕국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이 학술적인 문서는 지중해에서 북아프리카, 남서·중앙아시아까지 널리 분포하는 대극과(Euphorbiaceae) 식물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크로조포라 팅크토리아의 흔적을 따라서

15세기의 귀중한 문헌에는 은록색을 띤 작은 잡초 같은 식물, 즉 Chrozophora tinctoria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논문 공저자인 파울라 나바이스(Paula Nabais)는 "충분히 정밀한 묘사 덕분에 이 식물을 폴리움과 연결 지을 수 있었다"며 "이후 우리는 세 개의 캡슐로 이루어진 열매를 가진 이 식물의 생김새, 자라는 계절, 그리고 경작지 가장자리의 건조하고 석회질인 토양이라는 선호 서식지까지 알게 되었다. 이제 직접 찾아나설 일만 남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잊혀진 중세 청색 안료  폴리움 , 수백 년의 수수께끼가 풀리다포르투갈 남부에서 발견된 Chrozophora tinctoria L. A. Juss. ⓒ Paula Nabais 외 / Nola

포르투갈 식물상 전문가인 아델라이드 클레멘트(Adelaïde Clemente) 박사의 도움으로 연구진은 이 식물이 서식하기 가장 적합한 지역을 좁힐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2016년 7월의 어느 화창한 아침, 포르투갈 남부 몬사라즈(Monsaraz)의 하얀 성벽이 눈부신 마을 근처 길가에서 이 작은 식물이 발견된 것입니다. 대학 실험실로 옮겨진 식물은 연구진이 분자 구조를 분석하고 아득한 중세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잊혀진 중세 청색 안료  폴리움 , 수백 년의 수수께끼가 풀리다청색 염료가 추출된 Chrozophora tinctoria의 열매. ⓒ Paula Nabais / Nola

리스본에서 진행된 화학 분석을 통해 연구진은 Chrozophora tinctoria에서 새로운 분자 '크로조포리딘(chrozophoridine)'을 분리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바로 이 물질이 옛 장식가들이 즐겨 사용한 아름다운 청색 염료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마리아 조앙 드 멜루 박사는 "이 분자는 지금까지 예상했던 것처럼 많은 푸른 꽃과 열매에 들어 있는 안토시아닌 계열이 아니었고, 가장 안정적인 천연 청색 염료로 알려진 인디고와도 무관했다"고 밝혔습니다.

폴리움의 실제 사용 방식

중세 시대에 Chrozophora tinctoria에서 추출한 청보라색은 매우 오래된 기법을 통해 헝겊 조각에 저장되었습니다. 주로 삼베 천 조각에 담긴 색 추출물은 이렇게 손쉽게 보관되어 여러 수도원의 스크립토리움에 있는 장식 공방까지 운반될 수 있었습니다.

잊혀진 중세 청색 안료  폴리움 , 수백 년의 수수께끼가 풀리다중세 레시피대로 폴리움을 적신 천 조각. ⓒ Paula Nabais / Nola

수사들은 이 천 조각을 물에 적셔 희석할 색을 얻으면 되었습니다. 중세 고고학과 색채 재료 전문가인 베르나르 기노(Bernard Guineau)는 "얻어진 색은 접착제(바인더)와 혼합되어 정련되었고, 이를 통해 섬세하면서도 매우 선명한 색조의 채색 안료가 완성되었다"고 기록했습니다.

흥미롭게도 '토르네솔(tournesol)', 즉 해바라기라 불리는 일종의 폴리움은 19세기까지 프랑스 남부 갈라르그(Grand-Gallargues, 오늘날 갈라르그르몽튀외, 가르주) 지역에서 생산되었습니다. 이 생산물은 치즈 껍질을 착색하기 위한 네덜란드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