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3400년 된 고대 공놀이 경기장 발견,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기원을 다시 쓰다

공놀이(ball game)는 메소아메리카 문명을 가장 잘 상징하는 의식 중 하나로, 무려 3000년 넘게 번성해 온 고대 스포츠입니다. 그런데 최근 멕시코에서 이 경기의 역사를 다시 쓸 만한, 가장 오래된 경기장 중 하나가 발견되어 학계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3400년 된 고대 공놀이 경기장 발견,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기원을 다시 쓰다

멕시코 치아파스주 토니나(Tonina) 유적에서 출토된, 공놀이 선수들을 묘사한 부조.

고원지대에서 나온 충격적인 발견

나이로 따지면 무려 3400년에 달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공놀이 경기장이 멕시코 미스테카알타(Mixteca Alta) 노치슬란(Nochixtlán) 계곡 고원지대의 에틀라통고(Etlatongo) 유적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이번 성과는 조지 워싱턴 대학(미국)의 제프리 블롬스터(Jeffrey Blomster)와 빅토르 살라사르 차베스(Victor Salazar Chávez)가 수행한 연구를 통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되었습니다.

3400년 된 고대 공놀이 경기장 발견,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기원을 다시 쓰다

이 고대 경기장의 표면 아래에서 멕시코에서 가장 오래된 공놀이 구장 중 하나가 잠들어 있었다. © 에틀라통고 프로젝트

그동안 출토된 유물들은 이 의식적인 경기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이 남부 멕시코만 저지대와 태평양 연안의 해안 정착민들이었음을 시사해 왔습니다. 이 경기는 북부 멕시코부터 코스타리카까지 중앙아메리카 전역으로 퍼진 광대한 지역에서 마야 문명과 그 후의 아즈텍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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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틀라통고에서 발견된 이 유물들은 공놀이 선수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허리에 찬 두꺼운 보호대로 공을 힙으로 치며 경기를 했다. © 블롬스터 & 살라사르 차베스

경기장 아래 숨어 있던 '봉헌 의식'의 흔적

연구진은 에틀라통고에서 기원전 1200년경에 건설된 대규모 공놀이 경기장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그 아래 자리한 더 오래된 약 1500㎡ 규모의 경기장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 이 초기 경기장은 기원전 1374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현장에서는 인골, 동식물의 탄화된 뼈, 도자기로 만든 공놀이 선수 피규어 파편 등이 함께 출토되었는데, 이는 경기장이 폐쇄될 때 치러진 일종의 '종료(봉헌) 의식'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됩니다. 당시 사람들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장소를 조상들의 보호 아래 두는 상징적 의식을 거행한 것입니다.

3400년 된 고대 공놀이 경기장 발견,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기원을 다시 쓰다

선수들은 손, 발, 머리를 사용하지 않고 고무공을 쳐야 했다. 식민지 시대 문서에 삽화로 남아 있는 장면. © 크리스토프 바이디츠, 게르마니셰스 국립박물관(뉘른베르크)

손도 발도 머리도 못 쓰는 경기

공놀이는 길이 약 20m에 달하는 I자형 직사각형 코트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양옆은 석축 플랫폼으로 경계가 지어져 있었고, 2명에서 7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맞붙었습니다. 선수들은 고무공을 서로 주고받으며 골대에 넣어야 했는데, 사용할 수 있는 신체 부위는 엉덩이, 팔꿈치, 전완, 어깨, 엉덩이 위 부분뿐이었습니다. 절대로 손, 발, 머리를 쓸 수 없었습니다. 벽에 뚫린 링을 공이 통과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던 것으로 보이는, 그야말로 격렬하고 화려한 경기였지만, 여기에는 어두운 면도 존재했습니다.

3400년 된 고대 공놀이 경기장 발견,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기원을 다시 쓰다

현존하는 가장 큰 공놀이 경기장인 멕시코 치첸이트사(Chichen Itza) 유적의 링. © Shutterstock

태양의 순환을 재현한 우주적 드라마

온두라스 코판(Copan)이나 멕시코 토니나 같은 마야 유적 벽면에서 발견된 풍부한 도상학적 자료는 이러한 경기 중에 행해진 인신공양을 분명히 암시합니다(아래 참고). 고무공은 우주적 드라마 속 태양을 구현한 것으로, 경기 중 오르내리는 공의 움직임은 태양의 순환, 즉 생명의 힘이 죽음의 힘을 이긴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목표는 태양이자 공을 최대한 오랫동안 움직이게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무공의 종류가 무척 다양했다는 사실(무게 최대 3kg, 지름 8~30cm 편집자 주)은 여러 기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어떤 것은 단순히 향처럼 태워 바치는 제물이었을 것이고, 어떤 것은 실제 경기에만 쓰였을 것이다."라고 논문 저자들은 설명했습니다.

지금까지 약 2300개의 공놀이 경기장이 집계되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1650년경으로, 멕시코 치아파스 평야의 파소데라아마다(Paso de la Amada)에 위치해 있습니다. 한편 오늘날 멕시코에서는 선사시대 공놀이의 현대적 변형인 '울라마(ulama)'가 다시 유행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정복 이후 금지된 경기, 그리고 남은 의문

공놀이와 인신공양
인신공양 및 우상 숭배적인 종교 의식과 결부되어 있었던 탓에, 공놀이는 1519년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뒤 금지 명령을 받았습니다. 도미니코회 수사 디에고 두란(Diego Durán)의 기록에 따르면, 1570년경 멕시코에 머물렀던 그는 포로가 경기 중 처형될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희생 의식에 관한 또 다른 정보원은 구전으로 전해진 마야 신화 서사시 『포폴 부흐(Popol Vuh)』입니다. 이후 도미니코회 수사 프란시스코 시메네스(Francisco Ximénez)가 이를 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내용은 지하 세계의 신들이 인간과 맞붙아 속임수로 승리한 뒤 참수에 이르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살해된 영웅들은 이후 지하의 신들과 다시 대결하여 승리하고, 똑같은 응보를 되돌려 줍니다.

경기 중 희생된 선수들은 실제로 수많은 마야 유적의 도상학에서 두드러지게 등장합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여전히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러한 희생의 주제는 단지 신화를 묘사한 것일까요, 아니면 패배한 선수들이 실제로 정기적으로 희생되었던 걸까요? 이 물음은 아직도 논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