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미스터리하게 사라진 도시' 카호키아, 연구자들이 깨뜨린 잃어버린 문명의 신화

유럽인의 식민지화 이전 북미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 중 하나였던 카호키아(Cahokia)는 결코 신비롭게, 혹은 갑작스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인류학자들의 최신 연구 결과가 밝혀낸 사실이다. 탁월한 아메리카 원주민 도시의 과거에 대한 기존 통념을 한 번 더 흔들어 놓은 성과다.

 미스터리하게 사라진 도시  카호키아, 연구자들이 깨뜨린 잃어버린 문명의 신화

서기 1100년경 북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원주민 도시 중 하나였던 카호키아를 그린 삽화. 현재 미국 일리노이주 남서부에 위치해 있다.

이 연구의 뿌리는 201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과학지 Sciences et Avenir는 당시 캘리포니아대학교(버클리)의 인류학자 A. J. 화이트에게, 고대 인구의 규모를 가늠하기 위한 배설물 분석 연구에 대해 인터뷰한 바 있다. 연구 대상은 바로 북미 선콜럼버스 시대 유적 카호키아였다. 지난 1월 27일, 화이트와 그의 팀은 추가 관찰 결과가 이 유적의 역사에 새로운 빛을 던져준다고 발표했다.

서기 12세기 전후 절정기에 카호키아는 아직 유럽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북미 대륙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미국 영토 내에서 필라델피아가 같은 규모에 도달하기까지 무려 600년 가까이 걸렸을 정도다. 그러나 오늘날, 미시시피강 유역에서 가장 높은 피라미드들을 품었던 이곳, 지금의 일리노이주 남부는 웅장한 고고학 유적지라기보다는 단순히 파여진 작은 공터에 가까워 보인다. 몇 세기 앞선 시대에 대륙 최대의 피라미드들이 서 있었던 선콜럼버스 문명의 요람 테오티우아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풍경이다. 부동산 개발업자들과 고속도로 건설업자들은 1960년대까지 시간에 닳아버린 카호키아의 잔해마저 철거하며 이곳의 흔적을 거의 지워버렸다.

배설물이 말해 주는 역사

안타깝게도 기록 개념이 없었던 카호키아인들의 역사는 글로 남은 흔적이 더욱 드물다. 그렇기에 식민주의에 물든 환상이 이 사회 역사의 수많은 미지의 영역을 어설프게 비춰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가장 강력한 통념 중 하나는 1400년경으로 추정되는 카호키아의 쇠퇴에 관한 것이다. 미국 중부 대부분 지역에 대해 수 세기 동안 경제·문화·종교적 지배를 누린 뒤, 전설에 따르면 카호키아의 2만 명—농사와 어업, 교역에 종사하던 원주민들—은 정착민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갑자기 사라졌다고 한다.

로아노크 잃어버린 식민지 신화와도 비슷하게, 이 신비한 '증발'은 점차 홍수와 가뭄의 반복, 그리고 불가역적인 자원 고갈로 설명되어 왔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가 주도한 연구팀이 바로 이 통념을 한 단계 더 헐어냈다. 학술지 American Antiquity에 게재된 논문에서 연구 책임자인 인류학자 A. J. 화이트는 인간 분변 스테놀(아래 상자 참조), 화석화된 꽃가루, 숯 등을 분석한 결과, 북미에서 가장 상징적인 선콜럼버스 대도시의 주민들도 쇠퇴해가던 자신들의 도시를 "갑작스럽게 버리고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분변 스테놀, 인간 존재의 확실한 지표. 음식(특히 고기)을 소화할 때 장에서 생성되는 이 유기 분자는 배설물로 배출된 뒤 수천 년 동안 퇴적층 속에 보존될 수 있다. 인간은 이를 동물보다 훨씬 많은 양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동물 스테놀과 구별하기 쉽다. 따라서 특정 지역 인구의 급격한 변화를 평가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18세기까지 거의 끊기지 않은 존재

"카호키아는 유럽인과의 첫 접촉 당시 이미 유령 도시였다고 늘 여겨져 왔다. 적어도 고고학 기록이 보여주는 바로는 그랬다." A. J. 화이트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지역에서 수 세기 동안 지속된 원주민의 존재를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번 결과가 "[유럽인 도래 이후] 원주민의 약화와 소멸만을 부각하고 회복력과 지속성은 외면해 온" 이른바 '멸종 위기 인디언 신화'를 흔드는 성과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400년경 역사상 최저 인구 수준에 도달한 후 카호키아는 1500년대 원주민 정착의 두 번째 물결을 맞이했으며, 이는 1700년대까지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존재의 시작이었다. 실제로 이주, 전쟁, 질병, 환경 변화가 카호키아 사회를 마저 꺾은 것은 바로 이 시점부터였다. 화이트는 "카호키아의 역사는 '안녕, 원주민들 / 어서 오세요, 유럽인들'이라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며 "우리 연구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혁신적인 증거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옥수수 농사와 인신공양

인류학자와 연구팀의 관찰은 카호키아 원주민들의 생활 방식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정보 또한 확인시켜 주었다. 그들은 옥수수를 재배하고 들소를 사냥했으며, 밭을 계획적으로 태우는 통제 소각 방식도 활용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거대한 인골 더미의 발견으로 오랜 추측이 사실로 입증되었다. 카호키아인들은 의례적인 집단 살해, 즉 인신공양과 의례적 매장을 행했다는 것이다. 특히 1967년에는 고고학자 팀이 발굴한 72번 언덕(mound 72) 아래에서 250명 이상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이들은 매장지 중앙에 안치된, 풍성한 장신구로 장식된 유해가 확인된 두 명의 고위 인물을 기리기 위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