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멕시코시티의 오래된 운하 바닥에서 발견된 무게 약 2kg의 금괴. 화학 분석 결과, 이 유물은 1520년 에르난 코르테스가 테노치티틀란에서 약탈한 보물의 일부로 확인되었습니다. 콩키스타도르의 약탈 물품 중 유일하게 남은 실물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른 발견입니다.

멕시코시티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 소장된 '노체 트리스테' 금괴
슬픔의 밤, '노체 트리스테(Noche Triste)'
1520년 6월 30일 밤부터 7월 1일 새벽까지의 그날은 '노체 트리스테', 즉 '슬픔의 밤'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즈텍 제국의 수도 멕시코-테노치티틀란을 약탈한 뒤, 스페인 병사와 원주민 동맹군으로 이루어진 콩키스타도르 에르난 코르테스의 군대는 주민들의 갑작스러운 반격에 밀려 도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패주하는 병사들은 어둠 속에서 몇 달간 모아 온 금을 최대한 챙겨 나가려 애썼습니다.
1519년 테노치티틀란에 도착한 이후 스페인인들은 원주민들에게서 빼앗은 수많은 보물을 녹여 금괴로 만들 충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대륙이 발견된 지 겨우 27년 만에 그토록 탐내던 금이었으니까요. 스페인인들은 테노치티틀란에서 아즈텍 신상, 무기, 화폐, 각종 장식품을 뒤덮고 있던 귀금속을 모두 떼어 내게 하고, 깃털 공예품·귀목·직물 등 나머지는 불태워 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아스카포살코의 멕시카 금세공인들이 아즈텍 신상에서 금을 추출해 스페인인들을 위한 금괴를 만드는 모습. 피렌체 코덱스는 스페인인들을 '굶주린 돼지처럼 금을 탐하던 자들'이라고 묘사했습니다. © Inah

금을 녹여 금괴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클로즈업. © Inah
당시 연대기 작가들은 도주 과정에서 스페인 생존자들이 전리품 일부를 멕시코 호수에 버렸으며, 여러 금괴가 저명한 도시를 감싸던 거대한 수역인 텍스코코호 바닥에 가라앉았다고 전합니다.

1524년 프리드리히 파이푸스(1485~1534)가 간행한 멕시코-테노치티틀란의 역사 지도로, 에르난 코르테스의 부하가 그린 원화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Inah
'정복사에 남을 거대한 발견'
기록에 따르면 스페인인들은 이후 현장으로 돌아가 가능한 한 많은 귀중품을 회수하려 했지만, 이 비극적인 사건과 관련된 물증은 지금까지 단 하나도 드러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981년 3월 멕시코시티의 한 거리 공사 중 발견된 무게 약 1.93kg의 금괴에 대한 화학 분석이 발견 40년 가까이 지난 후에야 이루어지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논문 공동 저자이자 멕시코 국립 인류학·역사학연구소(INAH)의 고고학자 레오나르도 로페스 루한은 분석 결과가 이 금이 틀림없이 테노치티틀란 출신임을 보여준다며 흥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복 역사상 엄청난 발견이며, 이 금괴는 노체 트리스테라는 비극의 유일한 실물 유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분석은 그가 이끄는 대신전(Templo Mayor)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는 '테노치티틀란 성역의 봉헌물에서 발견된 금 유물 컬렉션 분석에 착수했다'며 '각 유물의 실제 금·은·구리(Au-Ag-Cu) 함량을 파악해 대신전이나 치첸이트사의 신성한 세노테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비교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고 설명했습니다.

X선 형광 분광법(XRF)으로 분석 중인 금괴. © Jose Luis Ruvalcaba Sil
비파괴 분석 기법 XRF
연구진은 X선 형광 분광법(XRF)을 활용했습니다. 이는 비침습·비파괴 방식으로 시료 속 원소의 조성과 정확한 농도를 알아낼 수 있는 화학 분석 기술입니다. 분석 결과 테노치티틀란의 금은 다른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금과 달리 구리 함량이 낮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로페스 루한은 '이 금괴의 여러 부위에서 수행한 23회의 XRF 측정 결과 조성이 매우 균질했으며, 평균 금 76.22±1.03%, 은 20.75±0.98%, 구리 3.03±0.53%, 용융 온도는 950℃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학자들은 이 금괴를 만들기 위해 녹인 금이 아즈텍 보물이 보관되던 장소 테우칼코에서 스페인인들이 발견한 '모테수마 조상의 보물' 저장품에서 나왔거나, 페틀라칼코 왕실 창고, 틀라코츠칼코 무기고, 테노치티틀란의 토토칼리 작업장에서 전리품으로 확보한 금에서 나왔을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16세기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1492~1584)가 『누에바 에스파냐 진실의 역사』에서 약탈한 금속은 '에스카푸살코의 인디언 금세공인들과 함께 녹여 세 손가락 폭의 아주 넓은 괴로 만들었다'고 기록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손가락 하나의 길이는 1.8cm로 여겨지는데, '세 손가락'에 해당하는 5.4cm는 1981년 발견된 금괴의 폭 5.4cm(길이 26.2cm, 두께 1.4cm)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1981년, 운하 바닥에서
INAH는 보도자료를 통해 1981년 금괴가 선사시대 주거지 유적이 다수 남아 있던 도시 북서부에서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 로페스 루한은 당시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립니다. '1981년 3월 13일 아주 이른 아침, 기계 삽이 톨테카아콜로코로 추정되는 옛 도랑의 진흙에서 사각형에 곡률이 뚜렷한 노란색 금속 막대를 끌어올렸습니다. 깊이는 4.80m였습니다.' 발견 지점은 코르테스와 그의 부하들이 금을 실은 채 도주하려 했던 틀라코판 제방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오늘날 '노체 트리스테'의 유일한 증거를 직접 보려면 멕시코시티 국립 인류학 박물관을 찾아야 합니다. 이곳에서 금괴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노체 트리스테와 그 여파
역사 연대기에 따르면 '노체 트리스테' 다음 날, 테노치티틀란의 아즈텍인들은 콩키스타도르들이 가져간 전리품을 되찾기 위해 '톨테카아콜로코, 페틀라칼코, 미크틀란토코 운하'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호숫물에서 스페인인 시신 약 600구와 틀락스칼텍·셈포알텍 동맹군 시신 약 800구가 건져 올려졌고, 주민들은 '창, 검, 할버드, 석궁, 머스켓, 화포'를 주워 담았습니다.
그러나 1년 뒤, 새로운 군대를 재건한 코르테스는 그 비극의 밤에 대한 복수를 위해 멕시코-테노치티틀란 포위전을 개시합니다. 1521년 8월 13일의 그의 승리는 아즈텍 제국의 종언을 알리는 날짜로 기록되었습니다. 코르테스에게 포획된 마지막 황제(틀라토아니, '말하는 자') 쿠아우테목은 4년간의 감금 끝에 1525년 처형되었습니다.

모두 스페인인들의 희생자가 된 아즈텍 황제 쿠아우테목(1495~1525)과 모테수마(1466~1520). Credits: Leemage/AFP
아메리카의 금
선콜럼버스 사회에서 금은 교환 가치보다 권력의 상징으로서 진정한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신성한 금속으로 몸을 장식하거나 신상에 입히는 것은 지배 계층이 전능한 창조신들과 동일시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3천 년에 걸쳐 금은 변하지 않는 영원함과 불멸의 상징으로 경외와 존중을 받았지만, 정복자들을 놀라게 하듯 상업적 가치는 지니지 않았습니다. 정치·종교 엘리트가 착용한 금 장신구는 신성한 본질을 지닌 권력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