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중세 유럽, 기생충 감염이 만연했던 시대였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편충·회충 같은 기생성 벌레(헬민스)에 의한 장내 감염이 중세 유럽에서 매우 흔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연구진은 유럽 전역의 유적에서 발굴된 뼈와 토양 샘플을 분석하여 당시 이러한 질병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 규명할 수 있었습니다.

중세 유럽, 기생충 감염이 만연했던 시대였다

위 사진은 연구 대상 유적지 중 한 곳에서 발견된 장내 기생충 Trichuris trichiura(편충) 알의 현미경 사진입니다.

전 세계 15억 명이 감염된 '소외된 질환'

헬민스(helminths)는 촌충과 회충을 포함하는 기생성 벌레로, 인간에게 경미한 증상부터 심각한 질환까지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일부 감염은 가벼운 증상에 그치지만, 특히 어린이의 경우 만성 영양실조와 신체 장애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 벌레들은 사람 배설물 속 충란을 통해 전파되며 토양과 물을 오염시킵니다. 현재 전 세계 약 15억 명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헬민스 관련 질환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소외된 질병 목록에 속합니다.

오늘날 이러한 기생충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것처럼,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중세 유럽에서도 이들이 풍토병처럼 만연했으며 특히 흔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번 연구는 학술지 PLOS Neglected Tropical Diseases에 2020년 8월 27일 자유 열람 형식으로 게재되었습니다.

유럽 7개 유적지에서 채취한 589개 샘플

연구진은 유럽 각지의 7개 유적지에 남아 있는 무덤을 조사해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연구에는 서기 680년부터 1700년까지의 것으로 추정되는 총 589개 샘플이 활용되었으며, 모든 연령대와 체격의 골격에서 시료를 채취했습니다. 방대한 표본을 바탕으로 연구진은 특정 계층에서 기생충 감염이 더 흔했는지 여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토양 매개 선충인 Ascaris 속(회충)과 Trichuris trichiura(편충)는 일곱 곳의 유적지 모두에서 확인되었고, 음식물을 통해 감염되는 촌충류인 Diphyllobothrium latum(광절열두촌충)과 Taenia 속(조충)은 일곱 곳 중 네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현대인과 비슷했던 감염률

추가 분석 결과, 중세 인구의 선충 감염률은 T. trichiura(편충)가 8.5%, Ascaris(회충)가 25.1%로 추정되었으며, 이는 현대 인구에서 관찰되는 감염률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성별이나 거주 지역의 인구 규모에 따른 차이는 없었지만, 어린이에게서 감염률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중세의 토양 매개 헬민스 감염 유병률(전체 인구 대비 환자 수의 비율)이 오늘날 풍토병 국가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유럽에서 헬민스가 감소하는 데 영향을 준 요인들은 현대의 방역·개입 캠페인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과거 공동체의 기생충은 위생 상태, 하수 처리, 나아가 조리 습관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생활 환경에 관한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며 연구의 의의를 강조했습니다.